대법 "퇴직자 반출 자료, 통상 입수 가능하면 배임 아냐"…영업비밀 기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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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퇴직자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반출한 자료가 ‘통상 입수 가능한 정보’라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으로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퇴직 이후 유사 업종에서 창업하거나 이직한 전직자들에 대한 법적 판단의 기준을 다시 짚은 판결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의료기기 연구개발업체 B사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A씨에 대한 업무상 배임 사건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조직수복용 필러 등을 제조하는 B사에서 총괄팀장으로 일하다 2019년 퇴사한 뒤, 유사한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퇴사 당시 B사의 주원료로 사용된 C 제품에 대한 시험성적서, 동물이식 실험 보고서, 견적서 등을 무단 반출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활용하고, 같은 원료를 기반으로 한 필러 제조방법을 특허청에 출원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해당 자료는 C 제품이 B사 필러의 주된 원재료임을 드러내는 영업상 주요 자산”이라며, “A씨가 이를 고의로 반출한 점도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무단 반출된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는 통상적으로 입수할 수 없는 정보’로서, 보유자의 경쟁상 이익과 직결되는 영업상 주요 자산이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문제의 시험성적서는 C 제품 제조사가 작성해 거래처에 제공하는 보증 문서에 불과하고, 제조사 웹사이트 등에서도 유사한 정보가 확인된다”고 밝혔다. 동물이식 실험 보고서에 대해서도 “구체적 제품명이 특정되지 않았고, 실험 결과는 학위논문으로 공개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견적 정보 역시 “당시 구매 희망자라면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자료”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각 자료를 종합하더라도 B사가 C 제품을 단순히 구매한 사실 외에, 이를 주원료로 사용했다는 정보가 추론될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다”며, “자료들이 필러의 제조 공정이나 실험 방법, 가공 기술 등 B사 고유의 노하우를 담고 있지도 않다”고 부연했다.

이번 판결은 산업 현장에서 퇴직자들이 들고 나간 각종 정보의 법적 성격, 영업상 자산과 영업비밀의 경계를 엄격하게 따진 사례로 주목된다. 특히 재판부는 자료의 공개성, 접근 가능성, 경쟁 우위 기여도 등을 고려해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은 “이 사건 자료는 B사의 영업상 주요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유죄 판단을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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