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농경시대에는 한해 농사를 '하늘'이 좌우했다. 씨는 땅에 뿌렸지만 작물 재배에 필요한 볕과 강우는 오로지 하늘의 몫이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물을 대며 수확하는 농사의 모든 단계별 과정이 하늘의 시간에 달려 있었다. 지금과 같은 시계가 없었던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들이 농사 과정에 적합한 시간과 절기를 파악할 수 있는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개발해 보급했다.
16일 수원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을 주제로 올해 상반기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농사를 위해 축조된 저수지 축만제와 과거 농촌진흥청 구청사에 위치한 국립농업박물관은 지리적으로 한국 농업기술의 태동지에 터를 잡고 이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으며 2022년 11월 개관 이후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달 13일부터 9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는 '앙부일구' 등을 비롯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과 계절을 통해 축적된 선조들의 철학적 지혜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농업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 중이다.
전시장 입구 ‘프롤로그’에서는 벽면 영상을 통해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관찰하고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어 1부 ‘하늘을 바라보다’ 주제에는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풍년을 기원하고, 국가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하늘의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던 과정을 표현했다. 전시 공간에는 충청북도 청원군 아득이 마을에서 발견된 ‘아득이 별자리 석판’과 ‘덕화리 1호분 천장 벽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통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선조들이 농사를 위해 오랜 시간 하늘을 바라보며 관찰하고 기록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 전시관은 ‘하늘에 물어보다’라는 주제로 하늘을 관찰하며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읽고 농사 시기를 가늠해 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특히 이 공간에는 국립농업박물관 소장한 ‘앙부일구’가 전시돼 있다. 조선시대 말 해외로 반출돼 박물관 개관에 맞춰 다시 국내로 들어온 이 앙부일구는 다른 앙부일구와 달리 받침이 세 개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한양 도성 내 흥선대원군 별서인 석파정(石坡亭) 뜰에 세 개의 받침을 가진 일구대가 설치됐다는 점을 미뤄볼 때 이 곳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3부 ‘하늘을 읽다’ 전시실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세운 고유한 시간과 24절기에 따른 다양한 농사 유물을 볼 수 있다. ‘경국대전’과 ‘대전통편’을 통해 오늘날 기상청과 천문연구원의 업무를 맡았던 조선시대 관상감의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중국과 서양 세계의 역법을 참고해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으로 수정하고 보완한 ‘칠정산 내외편’도 전시돼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디지털 체험을 통해 내가 태어난 날과 가까운 절기를 확인하고 과거 농경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스마트폰에 담아 갈 수 있다.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앙부일구가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소망한다"며 "농업의 역사 속 과학기술 발전이 끼친 영향과 그 가치를 알아보고 미래 산업으로서 농업의 역할을 알아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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