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약하려던 마약과 다른 종류의 마약을 착오로 투약한 경우에도, 마약류관리법상 재활교육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내려졌다. 단순한 형사처벌 여부를 넘어서, 실제 투약 여부 및 중독 가능성에 따라 재활 명령의 실효성을 중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약 고의 있었고, 결과도 발생”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과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23년 9월 승용차 안에서 케타민을 투약하려는 의도로 물질을 준비했지만, 실제로는 ‘플루오로-2-옥소 PCE’라는 신종 향정신성의약품을 케타민으로 오인해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약물 모두 마약류관리법상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며, A씨는 케타민 투약 의도와 실제 PCE 투약 행위에 대해 각각 불능미수와 기수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PCE 투약에 대한 고의는 없었으므로 무죄”라고 봤지만, 케타민에 대한 투약은 고의는 있었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불능미수로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핵심 쟁점은 이처럼 결과적으로 미수에 그친 피고인에게도 재활교육 명령이 가능한가였다.
1심 “기수만 해당”…2심 “실질적 노출이면 가능”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유죄로 인정된 혐의는 투약 미수와 매수뿐이며, 실제 마약류 투약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마약류관리법상 수강명령 또는 이수명령 대상인 ‘마약류를 투약·흡연·섭취한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A씨는 의도한 물질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이상, 신체적 노출이 있었고, 중독 가능성과 재범 위험이 존재한다”며 이수명령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2심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착오로 인해 다른 마약류를 투약해 불능미수가 성립한 경우라 하더라도, 중독성 물질이 신체에 투입돼 중독 및 재범 위험성이 현실화되었다면, 기수범과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실질적 유해성과 재범 가능성 중심으로
그간 하급심 실무는 대체로 기수에 국한해 이수명령을 부과해 온 경향이 있었으나, 이번 대법원 판단을 통해 중독 노출의 실질성과 치료 필요성 중심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기준이 제시됐다.
마약류관리법은 2020년 이후 마약사범에 대한 단순 처벌보다는 재범 예방, 치료 중심의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약물중독 예방교육, 치료보호, 재활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제59조는 형사재판과 병행 가능한 ‘회복적 사법’의 일환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마약류를 실제로 투약·흡연·섭취한 경우”라는 법문 해석에 따라 형식적으로 기수로 인정된 피고인에 한해 명령을 부과하는 경향이 강했다. 불능미수범에게 교육명령을 적용한 사례로, 향정신성의약품의 중독성 강도, 혼합제제 증가, 투약 목적보다 결과 중심 판단이라는 법적 흐름에 발맞춘 확장적 해석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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