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미군의 이란 핵시설 폭격을 바라보는 북한

  • 북러 '新 조약' 1년의 의미

  • 연락사무소 폭파 5년… 소통 채널 복원 되어야

 
1
[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미군이 지난 주말 이란의 핵 심장부 포르도를 GBU-57 벙커버스터로 폭격하였다. 이에 따른 조치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라크, 카타르 소재 미군기지에 상징적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에 전쟁 변수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현실에 낙담할 사이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이란-이스라엘 간 휴전합의 소식을 전한다. 각계 전문가들이 새벽까지 쓴 분석과 전망 원고가 아침발 뉴스속보에 낡은 글이 되어버리는 일상, 공들인 글의 신선도를 담보하려면 칼럼니스트들이 세계 판도의 상수인 트럼프로 빙의해야 한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방국가가 창출하고 추구해온 △국제법상 신의성실 원칙의 표류, △보편적 가치의 실종과 △동맹국도 예외없는 힘을 앞세운 통상정책이 5개월간 목도한 트럼프 2기, MAGA의 민낯이다. 미 역사학자들은 트럼프 1기 당시부터 대통령의 기행을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에 견주곤 했다. 불현 듯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살아있었다면 두사람의 잔혹하고 핍절한 세계관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졌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폭격은 이른바 ‘예방전쟁’(preventive war)의 탈을 쓴 전쟁(war)이었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린치에 몰린 잠재적 핵보유국가를 바라보는 또 다른 국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마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북한은 ‘뉴욕채널’을 통한 트럼프 측의 친서 전달 시도 -협상재개의 사인과 같았던- 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NK뉴스 6.11). 공교롭게도 이후 미국은 지난 20일 연방 관보에 북한을 특별한 위협(한반도 내 핵분열 물질의 존재와 확산 위험 등)으로 간주하고 국가비상사태 국가로 재지정하였다. 굴욕적 휴전합의의 기로에 선 이란은 내심 NPT 탈퇴와 마이웨이를 택한 제2의 북한이 되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리비아에 이어 이란처럼 되지 않을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 자명하다. 그는 지난 23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주권국가를 난폭하게 유린한 미국의 이란 공격을 강력 규탄”하면서도 국제사회의 혹독한 제재를 견뎌온 지난 시간에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대량살상무기의 고도화라는 노정된 시간표 하에서 미국의 주의를 한반도로 돌리고 북미간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그간의 대외전략 역시, 적어도 내년초 예정된 제9차 당대회까지는 가드를 바짝 올린 채 주변시(peripheral vision) 체제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러한 ‘버티기’의 배경에는 1년 전 푸틴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체결한 포괄적·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이하 ‘신 조약’)이 있다.
신 조약 체결 당시를 반추해보자. 2024년 6월 푸틴의 평양 방문은 24년 만에 양국관계의 위상을 제도적으로 재정비, 격상시킨 사건이었다. 특히 조약 전문 4조에는 구소련 당시 북한과 맺은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1961.7)에 버금가는 자동 군사지원 내용이 있다. 즉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양국간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역안보 차원에서 북러간 신 조약의 체결은 기존의 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한 조약(2002.2)이 불가분의 관계로 전환되었음을 선언한 것으로,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역학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1년이 경과한 현재 신 조약의 위상은 두 가지 차원의 실효적 기능으로 인하여 격상되었다.
첫째, 경제적 효능감이다. 돌이켜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2.24) 직후부터 일관되게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온 북한은 푸틴의 평양 답방과 신 조약 체결을 계기로 정치·경제·안보 면에서 두둑한 보상을 확약받았다. 러시아는 북한의 군사지원을 제도적 범위 내에서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순망치한이라 불리던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는 소원해졌다. 신 조약과 별도로 체결된 '두만강 국경 자동차다리 건설에 관한 협정'(2024.6.20.)은 지난 4월 30일, 착공 소식으로 사문화되지 않았음을 알렸다. 항공·교통에 대한 협력도 진행중이다. 지난해 6월부터 양국 간 단체관광식 여객열차 운행이 재개된 이후 최근 모스크바·평양 및 하바롭스키·평양 직통 철도 구간 운행도 재개되었다. 블라디보스톡·평양 노선의 항공 운항 확대를 협의중인 상황에서 교육분야로까지 협력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국 비영리단체 오픈소스센터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북한에 제공된 러시아산 정제유 규모를 유엔 안보리 제재 사안인 연간 50만배럴을 상회하는 100만 배럴로 추정했다. 러시아가 이미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고 대북제재 위반을 감시하던 유엔 패널을 철수시킨 후였다.
둘째, 안보적 실익이다. 쿠르스크 지역의 전황이 러시아측으로 기울자 북한은 지난 4월말 노동신문을 통해 파병 사실을 알리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에 따른 군사동맹 차원의 조치(신 조약 4조)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유사시 ‘예방전쟁’ 가능성을 억지하기 위해 한미일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미중 일각에서 신 조약의 유효기간은 러시아의 탄약 수요가 떨어지는 러-우 전쟁 종료시까지라며 평가절하되던 상황이 단숨에 역전되었다. 상술한 원유 등을 비롯한 러시아의 대북 지원은 북한의 포탄과 탄도미사일, 병력 등 대러 지원의 형태로 돌아와 유리한 전황에 힘을 보탰다. 러-우 간 휴전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신 조약은 국제사회에서 빗겨난 양국의 밀착행보를 상징하는 구속력있는 제도로 정착하였다. 이를 방증하듯 러시아의 국방 책임자인 세르게이 쇼이구 러 국가안보서기는 올해만 세 번 평양을 찾았다. 그는 최근 방북(6.18)에서 쿠르스크 재건을 위한 6천명 규모의 북한의 제3차 파병 지원을 언급하며 양 국가간 ‘형제적 지원’ 성격을 강조했다. 북한군의 막대한 희생과 추가 파병은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을 반영한다. 러시아가 지난해 북한에 제공한 판치르 이동식 방공시스템, 전자전 체계, 전파 교란장치과 드론 대응 훈련과 실전 경험은 이미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처럼 북러간 신조약 체결 1년은 상호 밀착이 군사·경제적 실익과 비례했던 시간이었다. 국제정치는 예측과 대비, 작용과 반작용의 영역이다. 최근 중동 이슈는 북러 양국에게 쏠렸던 국제사회의 이목을 돌리며 협력의 시간을 벌어주고 있으나, 양국의 행보는 역설적으로 한미일 진영의 군사적 수요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됨도 사실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넘어서기 힘든 한국의 새 정부나 일괄타결식 해법을 지향하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섣부른 대화를 꺼리는 이유다. 지금은 미국 일극 질서의 이완과 북중러 3각 협력 간 복합적 이해관계의 틈새를 활용하는 국익 기반의 외교와 대북 전략 수립을 위해 중지를 모을 때이다.

 
필자 주요 이력
 
▷통일부 과장(서기관) ▷연세대 통일학 박사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