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한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8%까지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대(對)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과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것을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공개 지지하길 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시간) 미 정부 내부 문서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을 외교·안보·정치적 양보를 얻어내는 데 활용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WP가 보도한 ‘한·미합의 초기 초안’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지난해 기준 GDP의 2.6%였던 국방비를 3.8%로 증액하고 현재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수준인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도 늘릴 것을 요구했다.
또 초안에는 “대북 억제를 계속하는 동시에 대중국 억제를 더 잘하기 위해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한국이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도 한국에 요구할 사항의 하나로 포함됐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만해협, 남중국해, 중동 등 다른 분쟁 지역에도 투입할 수 있는 유연한 배치를 요구해 왔다. 반면 한국은 본래 임무인 북한 억제·방어가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방비의 GDP 3.8% 수준 증액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에 요구해 2035년까지 달성 목표로 합의한 ‘GDP 5%’보다 낮은 수치다. 다만 한국에 대한 목표 시한이 불분명해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WP는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4월 이후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에서 이런 비전통적 요구사항을 포괄하는 8페이지 분량의 ‘추가 협상 목표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미국이 다른 무역 협상국가인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대해서도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를 요구하는 방안이 담겼다. 아울러 캄보디아 해군기지에 대한 미 군함 방문·훈련 허용 요구, 이스라엘 내 중국 기업의 항구 소유권 박탈 요구, 호주 다윈항 장기 운영권 계약 재검토, 마다가스카르의 중국 군사기지 거부 등도 적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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