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후 한국 금융산업은 그야말로 ‘격동의 80년’을 보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경제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에서 금융산업도 일익을 담당했다. 대내외적인 원인으로 위기에 봉착하고, 이를 극복하기도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강의 기적으로 이뤄낸 성과를 발판 삼아 또 다른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퀀텀 점프(비약적 성장)를 위해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통해 직접금융을 활성화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강의 기적부터 저축은행 사태까지…격동의 80년
우리나라에 근대 은행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제 강점기인 1878년이다. 일본 제일은행이 부산에 세운 지점이 그 출발점이다. 이후 1899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민족자본으로 설립됐다.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광복 이후 금융권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1950년과 1954년에 한국은행과 한국산업은행이 각각 설립되고 은행 간 합병과 민영화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격변기를 거쳐 1960년대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 등 ‘조상제한서’로 불리는 5대 은행의 골격이 형성됐다. 금융기관 민영화가 이뤄졌지만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이 이뤄지던 시기였던 만큼 금융권은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70~1980년대 국내 은행들은 다섯 차례 경제개발 계획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면서 한강의 기적에 이바지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금융권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많은 금융기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과정에서 현재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이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도 국내 금융권은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대 초반 저축은행 사태 등 숱한 위기를 넘겼다. 2020년대 들어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중심의 자금경색, 새마을금고 뱅크런 등을 겪었지만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고 극복해왔다.
주요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진=연합뉴스]
생산적인 곳으로 자금 흘러야…위험관리 역량 키워라
금융권 안팎에서는 앞으로의 과제로 금융의 산업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내부통제 강화 등을 꼽는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기술로 인해 시장 지형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다른 산업을 지원해오던 전통적인 역할에 더해 금융 그 자체가 산업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대출 중심의 안정적인 사업에 치중하기보다는 생산적인 영역에 투자하면서도 고객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줄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경제학자들이 보는 금융 본연의 역할은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이 흘러가야 하는데, 위험성이 있는 곳에 자금을 보내려면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 앞으로는 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통제하던 시스템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지만 우리 경제가 이제 그 정도 단계를 넘어섰다”며 “민간의 활력이 더 중요해졌는데, 자본시장이 확대되고 직접금융이 발달해야 금융과 산업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