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곳곳에서 공급망 재편과 통상질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일이 경제 연대를 넘어 EU(유럽연합) 같은 완전한 경제 통합을 이룬다면 미국·EU·중국에 이어 세계 4위 경제권이 돼 국제사회에서 룰세터(규범 주도 세력)가 될 수 있다."(최태원 SK그룹 회장)
"반도체·주요 광물 공급망, 신흥·첨단 기술 개발 협력 등 지정학적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니나미 다케시 전 산토리홀딩스 회장)
첨단 자원을 무기로 한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제조 경쟁력과 일본의 원천기술이 손을 잡는다면 양국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일 경제구조가 글로벌 공급망 균열에 취약한 만큼 양국의 물적·인적·산업 자원을 통합해 국가 경쟁력 향상은 물론 글로벌 공동체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주경제는 최근 일본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등 주요 도시에서 한·일 산업 연결망을 강화하는 수출 기업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일은 미국과 중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고 인구도 적어 첨단 기술개발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며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산업에서 공동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일 경제협력 필요성은 정권 교체 때마다 부각됐지만 올해는 의미가 더 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투트랙 외교'를 천명하며 양국 경제협력을 '퀀텀 점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보수적인 일본 정·재계에서도 협력 기대감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30일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다음 달 중순에는 한국경제인협회와 일본 게이단렌이 공동으로 한·일 재계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한다.
일본 내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류는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K-뷰티' 'K-푸드' 'K-라이프스타일'로 확산하며 제4차 부흥기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전략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일 무역 비중은 2001년 14.8%에서 2023년 6.0%로 줄었고, 대일 수출액은 2011년 397억 달러에서 2023년 290억 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국 직접투자액 역시 2012년 45억4000만 달러를 정점으로 지난해 13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전략원은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수출이 줄어드는 동시에 공급망 분절화 충격을 겪고 있다"며 "식량, 에너지, 광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고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 얽혀 있어 세계 경제 분절화에 직접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한·일 경제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이다. 전략원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고, 유사한 경제 체급과 정치제도를 갖췄다"며 "양국 모두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고 공급망 취약성이 크다는 공통점을 고려할 때 글로벌 공동 공급망 구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