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3월 대법원 2부는 1·2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됐던 사건에 대해 원심을 깨고 대구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해당 표현이 모욕적이더라도 기사·기자 행태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는 맥락이 분명하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가 충돌할 때 어떤 기준을 볼 것인지 제시한 판결로 평가된다.
사건의 발단은 자동차 관련 온라인 기사 댓글이었다. 한 이용자가 2016년 2월 해당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단문 댓글을 남겼고, 기자가 모욕죄로 고소하면서 형사 재판이 시작됐다. 1·2심은 “기레기”가 기자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경멸적 표현이라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2021년 3월 25일 판결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댓글의 위치·시기·전후 문맥, 같은 기사에 달린 다른 댓글의 흐름을 종합해 볼 때 해당 표현은 기사 내용과 기자의 태도를 비판하려는 의견의 강조·압축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형법 제20조(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기레기’가 모욕적 단어라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이 단어가 ‘기자+쓰레기’의 조합어로서 언론·기자 행태 비판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어 온 점, 문제 된 댓글이 공론장(포털 기사 댓글란)에서 공적 사안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지나치게 악의적인 인신공격으로 보긴 어렵다고 봤다. 핵심은 맥락이다. 동일한 단어라도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비판하려고 썼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렇다고 ‘기레기’가 언제나 허용되는 건 아니다. 대법원은 공적 비판을 빙자한 인신공격, 특정 개인을 집요하게 조롱·비하해 사회적 평가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과거에는 교회 분쟁에서 상대를 “뻔뻔이” 등으로 지칭한 사안에서 모욕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결국 표현의 성격(사실·의견), 공적 관심사 관련성, 피해자 특정성, 전후 사정, 악의성의 정도가 쟁점이 된다.
법조계는 이번 라인의 판단이 온라인 댓글 문화와 언론 비평의 경계 설정에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되, 개인의 인격권을 해치는 과잉 공격은 선을 넘는다는 기준이 보다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공론장에서 공적 사안(기사의 내용·보도 태도)에 대한 거친 비판은 허용될 여지가 있으나, 기자 개인을 특정해 사생활·인격 자체를 폄훼하는 방식으로 반복 공격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댓글의 장소(공론장인지), △표현의 목적·대상(기사·보도 행태 비판인지, 개인 인신공격인지), △표현의 정도(과도한 비하·비속어의 누적, 허위사실 개입 여부), △전후 맥락(같은 기사에 달린 다른 비판과의 연속성), △피해자 특정성(불특정 다수 기자군 비판인지, 개별 기자 실명지칭인지) 등이 양형과 결론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같은 단어라도 ‘의견 표현’으로 볼 여지가 있으면 무죄, ‘인격 모독’에 가깝다면 유죄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선 “막말 면죄부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판결 취지는 단어 자체를 합법화한 게 아니라, 표현의 맥락에 따른 책임 평가를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기사 품질·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 가능성을 넓혀 공적 담론을 활성화하려는 헌법적 가치 판단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동시에 악의적·집요한 개인 공격이나 허위사실 유포는 여전히 형사책임의 영역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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