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독일 자동차산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명품차로 인기를 끌던 벤츠 본사,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시에는 우울한 스토리가 난무하고 있다. 가난한 지역에서 최고 부자 주로 도약한 독일 중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도 슈투트가르트시가 ‘유럽의 디트로이트로 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고급지인 스위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등에서다.
미국 디트로이트시는 미시간 주도이자 최고 자동차 도시로 20세기 초 포드, 제너럴모터스,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산업을 통해 큰 부를 쌓았다. 하지만 시대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하고 혁신을 게을리해 1980년대 초 이곳 자동차 수요가 급감했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를 떠났다. 이곳에서 생산된 대형차들은 오일 쇼크에 직격탄을 맞았고, 그 자리에 소형차이자 에너지를 절약하는 ‘메이드 인 재팬’ 일본차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모터 시티’였던 디트로이트는 범죄, 쇠퇴, 붕괴의 상징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의 일환인 ‘러스트 벨트의 몰락 현장’이자 ‘망가진 백인의 모습’이 부각되면서 세계적으로 회자되었다.
독일의 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은 최근까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자랑했다. 인구 5200만명인 한국에서도 8200만명인 독일보다 더 많은 벤츠, 포르쉐 등이 팔렸다. 독일 자동차들이 국내외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시 자동차 브랜드들이 몰락할 때처럼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이 부진의 늪에 빠졌다. 이곳 도시 인구의 5분의 1인 약 25만명 이상이 자동차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 프리드리히스하펜에 있는 자동차 공급업체 ZF는 1만4000개의 일자리를 감축했고, 공급업체인 말레와 자동차 회사 포르쉐도 마찬가지다. 벤츠는 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명퇴 신청을 받고 있다. 또 최대의 자동차 공급업체 보쉬는 독일에서 직원을 12만9000명 고용하고 있는데 지난해 9000명을 감축했고 2030년까지 1만3000명 일자리를 없앤다고 발표했다. 이 주에서 자동차산업 관련 직업이 없어지거나 없어질 수가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다.
이후 독일 전기차들이 미국의 테슬라, 중국의 BYD 등에 경쟁력이 약하다. 독일의 전기차들이 잘 팔리지 않는다. 원인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아직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석유·디젤)의 자동차보다 비싸다. 잘못된 에너지정책으로 전기차 충전 비용이 미국보다 3배나 비싸다. 또 많은 지역에 충전 인프라가 부족해 불편하다. 미국과 중국 전기차 회사들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하고 있다. 보쉬 직장협회의 페투르젤리 회장은 “보쉬가 항상 중국보다 2년 앞서 있었는데 지금은 뒤처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가격경쟁력에서 독일차가 미국과 중국차에 밀리고 있다. 나아가 전기 모터는 휘발유 엔진보다 제조하기가 쉽다. 전문가인 포이어바하 박사는 “자동차 디젤 엔진 생산을 위해 10명을 고용할 수 있다면 전기 모터에는 1명의 직원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으면서 기존 차 산업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거대 실업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칩 넥스페리아를 통제해 폭스바겐 등 차 회사들이 공장을 세우고 있다. 독일 자동차 수요는 감소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2014년 2.2%였던 독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3년 –0.3%, 2024년엔 –0.4%, 올해 0.1%로 G7 국가 중 가장 낮다.
독일 자동차산업 추락에 다중 원인이 있다. 크게 3가지로, 먼저 세계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하고 성공에 취해 안주해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고, 무능한 정치 리더에 의한 잘못된 정책 등이다. 독일은 중국에 디젤 및 휘발유차를 수출하고 현지에 공장을 짓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내연기관에 의존한 자동차가 저물어가고 기후위기로 인한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전기차 혹은 하이브리드차가 대세가 되었다. 그 과정에 미국의 테슬라, 중국의 BYD 등이 자동차 산업의 새 강자로 부상했다. 독일은 중국 수입차 시장으로 역행되었다.
둘째, ‘혁신 없는 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독일 자동차 산업이 잘 보여주고 있다. 내연기관에 의존한 자동차산업과 전기차 시대는 완전히 다른 기술 및 산업 구조를 보인다.
셋째, 이상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의 녹색 포퓰리즘 정책이다. 성공에 취해 미래 생태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독일이 주도한 유럽연합(EU)에서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디젤 또는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신차는 등록할 수 없다. 독일의 자동차 위기는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기민당의 니콜레 크라우트 의원은 “내연기관 출구 2035년은 실수이고 연기되어야 한다”면서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성 정당의 잘못된 정책의 파장은 2026년 3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강성우파인 독일대안당(AfD)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베를린을 포함해 독일 전역 기성 정치인들이 연소 엔진 정책에 떨고 있다. 기성 정당들이 이상주의 녹색정책으로 강성우파 AfD가 최고 지지 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덮치면서 독일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폭탄은 독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잘못된 정치권의 결정으로 독일 경제를 어렵게 만든 또 다른 분야가 산업의 핵심인 에너지 분야다. 멀쩡한 원전을 폐기하면서 프랑스 원전 전기를 수입하고,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이중 행동’을 보인 것이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부터 외친 ‘탈핵’이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에 공포를 느낀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 때 단행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은 자국 전력의 30% 이상을 원자력에서 얻으며 안정적인 공급과 낮은 탄소 배출을 달성했다. 독일 신재생에너지 풍력과 태양광은 날씨에 따라 생산이 불안정하고 저장 기술은 여전히 비싸고 미완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원전 이후 독일의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깨끗한 에너지 정책이 더 오염된 공기를 만든 셈이다.
EU가 ‘그린에너지’로 판명한 원전을 독일이 버리고 이상주의 녹색정치에 매몰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원전을 더 많이 짓는 실리를 택했다. 독일은 전기요금 상승과 제조업 악화로 고통받고 중국은 안정적 전력과 기술 축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탈원전으로 독일 전기요금은 유럽에서 최고로 비싸고, 경제 성장률은 가장 나쁘다. 미국과 중국은 원전 기술로 성장의 엔진을 키우고 있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미국보다 3배나 비싸고, 전기차 충전 비용도 3배나 비싸다. 전기요금은 가정 부담뿐 아니라 공장의 생산비용이며 수출 경쟁력의 핵심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시대에 데이터센터 및 컴퓨팅센터는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한다. 미국과 중국이 원전에 집중하는 배경은 AI뿐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연관이 있다.
이상을 앞세운 실험과 무능하고 잘못된 정치리더의 판단이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들고 있는 사례를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다. “AI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에너지 및 탈원전 정책이 걱정이다. AI 및 전기자동차는 전기로 먹고산다.
김택환 원장(미래전환정책연구원)
국가비전전략가로 문명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본(Bonn)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중앙일보 기자, 대학 교수를 거쳤다. <미중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 미래> 등 20권 이상을 저술한 작가이자 국회·삼성전자 등에서 350회 이상 특강한 유명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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