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하늘공원 억새밭에서 가을맞이를 하다

원철 스님
[원철 스님]


가까운 곳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억새공원이 있다 하여 인근 절집에 머물고 있는 도반 몇 명과 ‘번개팅’으로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으로 나들이를 했다. 사실 말만 들었지 그동안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곳이다. 전체일정을 소화하는데 오후 반나절이면 족했다.
 
입구 주차장에서 하늘공원까지 전동차를 운영했다. 걸어서 올라가려는 사람들보다는 셔틀 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매표창구에는 ‘맹꽁이 차’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하지만 전혀 맹꽁이 디자인은 아니였다. 관광지라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개방형 전기수레차에 ‘맹꽁이’라는 이름만 빌려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 환경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타기만 해도 하늘공원 웅덩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맹꽁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난지도 하늘공원 표지석 사진  저자 제공
난지도 하늘공원 표지석 [사진 = 저자 제공]

 
‘하늘공원’이라는 표지석 앞을 지나 한강변을 끼고있는 바깥 길을 따라 걸었다. 맑은 하늘이 푸른 강물과 맞닿은 자리를 지그시 응시하며 저녁노을까지 겹쳐친 풍광을 상상했다. 이내 고개를 돌리니 온통 억새밭이다. 5만평 남짓이라고 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만큼 광활한 억새밭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이롭다. 물론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심고 가꾼 것이다.
 
숱한 사연을 가진 난지도 하늘공원의 조성과정을 조목조목 정리한 길다란 게시판 앞에 섰다. 일백여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함께 했다. 난지도(蘭芝島)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난초(蘭草)와 지초(芝草)라는 귀한 꽃풀 이름을 명함으로 삼았다. 난초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초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삼국유사〉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김수로왕이 아유타국의 허황옥을 부인으로 맞아할 때 지초로 만든 음료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지초는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신선들이 먹는 불로초로 알려져 있다. 그런 지초와 난초가 가득했던 아름다운 섬이였다. 지극히 아름다운 우정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고 한 사자성어를 보더라도 지초와 난초가 지닌 품격을 짐작할 수 있겠다.
 
 
하늘과 한강이 맞닿은 풍광이 일품이다 사진저자제공
하늘과 한강이 맞닿은 풍광이 일품이다. [사진=저자 제공]

물론 난지도는 경치도 뛰어났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에서 서울 근교의 명승지로 등장할 정도였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는 금성산 앞에 있는 모래섬이란 뜻으로 ‘금성평사(錦城平沙)’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1804~1866)는 한양의 상세판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와 〈수선전도(首善全圖)〉에서 중화도(中華島)라고 표기했다. 꽃섬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에도 수십가구의 섬주민들이 밭에서 수수와 땅콩을 재배하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면서 100m 높이의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바뀌었다. 이후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다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뒤따랐다. 이처럼 난지도는 꽃섬과 생활폐기물 처리장이라는 상반된 역사가 중첩된 곳이다. 그 위에 다시 억새공원을 조성되었으니 지금은 삼중적 이미지가 겹쳐진 곳이라 하겠다. 2025년 하늘공원의 억새축제는 벌써 24회를 맞이했다.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극적인 변화를 겪은 터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억새밭을 거닐며 가을을 만끽하다 사진저자 제공
억새밭을 거닐며 가을을 만끽하다. [사진=저자 제공]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노래제목 ‘짝사랑’)”라는 노래는 공중파의 장수 프로그램 ‘가요무대’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으악새는 새 이름이 아니라 억새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안내판에 적어 놓았다. 으악새 뿐만 아니라 갈대와 억새도 구별해야 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물가에 핀 것은 갈대라고 하고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것은 억새라고 분류한다. 하지만 달마(達磨)대사에게 필요한 것은 억새가 아니라 갈대였다. 꺾은 갈대 한 줌을 뗏목 삼아 양자강(揚子江)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 ‘삘’이 꽃혔던 선(禪)화가들은 수묵(水墨)으로 이 상황을 한지 위에 단숨에 그렸다. 현재 ‘달마절로도강도(達磨切蘆渡江圖)’ 몇 점이 동아시아의 유수한 박물관에서 명화로 대접을 받고 있다.

난지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갈대가 우거진 강가에 들오리가 날아드는 곳이라 압도(鴨島 오리섬)라고도 불렀다. 타임머신을 타고서 순간이동을 한다면 당나라 때 마조(馬祖709~788)선사가 제자 백장(百丈 ?~814)과 함께 거닐던 갈대밭 현장까지 갈 수도 있겠다. “방금 그 들오리(野鴨)는 어디로 날아갔느냐?”고 물었던 스승의 급작스런 질문에 어물거리며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코를 비틀었다.
 
뒷날 그 일화를 전해 들은 상방 익(上方 益)선사는 대답삼아 한 마디 거들었다.
유수(流水)는 유서동(有西東)이나
노화(蘆花)는 무배향(無背向)이라
흐르는 물은 동쪽 서쪽이 있으나 갈대꽃은 앞도 뒤도 없어라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