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되면 어때"…리차드 파커는 맹수·파이·동료 그리고 나

  • 박정민, '라이프 오브 파이'로 8년만 무대 올라

  • "'너를 사랑해' 대상 항상 바뀌어"

  • '타자'같던 파이, 이제야 한발짝 가까이

  • "어느 쪽이 진짜든…하루하루가 생존"

배우 박정민의 라이프 오브 파이 연습 현장 모습 사진에스앤코
배우 박정민의 '라이프 오브 파이' 연습 현장 모습 [사진=에스앤코]

배우 박정민에게 ‘리차드 파커’는 맹수, 표류하는 소년,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동료,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

8년여 만에 ‘라이프 오브 파이’로 무대에 선 그는 18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차드 파커, 온전히 너를 사랑해’란 대사를 할 때마다 대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호랑이한테 할 때도 있고 파이 자신에게 할 때도 있고 저한테 할 때도 있어요. (극중) 호랑이가 쓰러졌을 때 보이는 (퍼펫티어) 친구에게 할 때도 있죠." 
 
‘라이프 오브 파이’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남겨진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227일간의 대서사시를 담은 라이브 온 스테이지다. 박정민이 연기하는 파이는 침몰 사건 조사를 위해 찾아온 보험 담당자에게 두 개의 이야기를 말한다. 하나는 동물이 나오고, 또 다른 하나는 동물이 나오지 않는다. 관객들은 궁금하다. “둘 중 어떤 이야기가 진짜일까?”, “호랑이가 진짜 호랑이일까 아니면 파이일까” 등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박정민에겐 리차드 파커는 열린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너'를 향한 마음의 모양은 비슷하다.

"뻗어나가는 대상들이 그때그때 조금씩 의도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에요. 그냥 어떤 날은 이 사람한테 말하고 싶고, 또 어떤 날은 호랑이한테 말하고 싶고 그래요."  
 
박정민 라이프 오브 파이 캐릭터 포토 탐색 대결 사진에스앤코
박정민 '라이프 오브 파이' 캐릭터 포토 탐색 대결 [사진=에스앤코]

정답이 없는 파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오디션 때부터 막막했다. "오디션에서 퍼펫티어들과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여보라더군요.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게 답이 없는 거였는데 그걸 시켰어요. 그런데 퍼펫티어들과 호흡하는데 울컥하며 눈물이 났어요. 신기했죠. '망했네'하면서 오디션장에 들어갔는데, 나올 땐 행복했어요."

그럼에도 파이가 '타자'같았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도 허무맹랑했다. "파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책도, 영화도 계속 봤는데도 그 과정이 지지부진했죠. (동물이 나오지 않는) 두 번째 이야기가 사실이고 첫 번째 이야기는 파이가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국에서 온 연출이 '첫번째 이야기가 진짜라고 한번만 믿어보면 안될까?'라고 해도 '그게 진짜가 아니잖아요'라고 계속 말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쪽이 진짜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그때 파이에게 한발짝 다가간 느낌이었어요. 가장 고무적인 순간이었죠." '신체훈련'처럼 느껴졌던 호랑이와의 호흡도 이제는 '교감'에 가깝다. 

지금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뭘 믿는걸까'란 의문이 있었던 그는 파이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파이는 그때그때 찾아온 고난과 행운을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리죠. 생존을 위해 신에게 의존한다고 느꼈어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일종의 성경이나 코란 같았다고 할까요. '이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말이 안 되면 어때'란 생각으로 바뀌었죠. 누군가의 해석이고, 믿고 싶고, 또 믿어야만 살 수 있다면 믿는게 당연하죠." 

특히 '채식주의자'인 파이가 살아남기 위해 바다거북을 잡아먹으면서도 "신념을 버리는 게 아니라며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순간, 나는 믿었기에 살아났다는 그 순간부터 이 공연의 키워드는 '삶'이다"라고 확신했다.  

"저도 늘 하루하루 생존하려고 살아요. 잘 살려면 그때그때 재미있는 거 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