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상하이 주가각(朱家角)에선 각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원철 스님
[원철 스님]


물길을 따라 형성된 동네를 수향(水鄕)마을이라고 부른다. 그 물에는 바다 강 호수는 당연히 포함된다. 거기에 인공적인 수로(水路)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자연물길 뿐만 아니라 수요자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운하 그리고 주변의 정박시설, 창고, 다리, 상업적 공간 및 살림집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갖가지 생필품을 물길따라 운반하던 시절의 생활유산이라 하겠다. 이제 철도와 도로망의 완비됨으로 인하여 물류라는 본래역할은 미미해졌다. 대신 여행상품 목록에 올라가면서 경관을 자랑하는 수로와 노 젓는 작은 배는 관광객들의 차지가 되었다.
 
십여 년 전 한창 더울 때 중국 상해(上海상하이)를 찾았다. 한국보다 더 혹독한 여름날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찌는듯한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궁여지책으로 물가를 찾기로 했다. 오진(烏鎭 우전) 수향마을이었다. 더위는 수변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습도까지 더해지면서 체감온도는 더욱 급상승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으니 차라리 생각을 바꾸는게 낫겠다. 이열치열(以熱治熱)도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덥다는 생각조차 포기할 무렵 나룻배가 수로를 벗어나더니 호수로 진입했다. 그 때 강바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마의 땀이 식는다. 수향마을과 첫 만남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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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각 수로 풍경] 
 
올해(2025년) 12월 겨울에 상하이를 찾았다. 다행이도 서울보다 덜 추웠다. 무거운 누비옷을 입지 않고도 다닐 수 있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반나절 정도 수향마을 주가각(朱家角 주자쟈오)을 찾는 기회를 가졌다. 넓은 호수를 곁에 두고서 큰 수로와 작은 수로가 교차하고, 골목길의 바닥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관광철도 아니고 연휴기간을 피한 덕분에 여유롭게 상가 주변을 기웃거리며 다닐 수 있었다. 동네이름으로 미루어 보건데 주(朱)씨 일가의 집성촌이었던 모양이다. 각(角)은 바다나 호수로 뾰족하게 내민 땅(岬 곶 갑)이라는 뜻이다. 전체 안내지도를 살펴보니 호수와 수로로 둘러쌓인 까닭에 동네 전체가 저절로 삼각형 땅모양으로 각이 잡혀 있었다.
 
군대용어였던 ‘각 잡는다’는 말은 본래 생활용품(옷 수건 등 포함)을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절도(節度) 있는 행동’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그 말이 병영 담장을 벗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언어로 자리잡았다. 군대 열병식은 물론 K팝 가수의 집단군무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칼각’이다. 숏폼시대에 제대로 된 순간 포착은 ‘쇼츠각’이 된다. 뭔가 적절한 상황이나 시기가 되었을 때도 ‘~~해야 할 각이다’라고 하면서 ‘타이밍’ 혹은 ‘챤스’라는 의미가 강하게 투영된 Z세대의 일상용어로 정착되었다.


수향마을 주가각에서도 사진을 잘 찍으려면 제대로 각을 잡아야 한다. 각을 잡기 전에 미리 물길과 옛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까지 찾아두어야 한다. 목 좋은 자리에선 피사체들의 잔소리에 따라 셔터 누르는 위치를 옮겨가며 각을 잡아야만 한다. 성질 급한 이의 셀카 역시 제대로 된 장면을 얻으려면 위치도 타이밍도 역시 각이 중요하다. 물가의 야외 테라스까지 갖춘 커피숍에 앉으니 제대로 각이 나오는지라 단체 인증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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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다리 아치형 방생교] 

  
드라마 촬영 장소로 몇 번의 선택을 받았다는 방생교(放生橋)에서 오래 머물렀다. 많은 관광객들이 난간 곁에서 혹은 진입 계단에서 또는 물가에서 제대로 된 한 컷을 위해 각을 잡고 있었다. 둥근 돌 아치형 교각이 몇 개 이어진 70m 정도의 길이를 가진 다리다. 폭도 6m나 된다. 인근에선 가장 큰 다리라고 한다. 게다가 몇백년의 시간이라는 무게까지 쌓였다. 어디에서 무엇을 찍어도 그림 엽서 정도는 될 만한 공간이다. 한껏 차려입은 청춘남녀가 각을 제대로 잡는다면 화보(畫報)까지 가능할 터이다.
 
하지만 물가에서 생활은 현실이다. 먹고 살기 위해선 갖가지 수산물도 채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날을 골라 잡힌 생선을 강물로 되돌려 보내는 방생의식도 필요하다. 공덕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적의 장소에 스님네들이 다리를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방생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다리 근처에서는 절대로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규약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풍습으로 굳어졌다. 강 저편에 탑처럼 생긴 3층누각이 돋보이는 절 건물이 보인다. 600년 역사의 원진(圓津)선원이다. 나루터(津)를 편안하게(圓)한다는 뜻처럼 물을 생활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은 관세음보살이 지켜주었다. 도교의 성황묘(城隍廟)에는 마조신(媽祖神)을 모셨을 것이다. 모두 해상과 수상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공간이다.
 
운하의 시작은 무려 150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隋)나라 문제(文帝) 양제(煬帝) 두 임금은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운하의 기초를 놓았다. 대대로 왕조를 이어가며 척박한 북쪽지방과 풍요로운 남쪽지방을 이어주는 운하는 물류의 필요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확장과 연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토사의 퇴적과 계절에 따른 수량의 심한 기복으로 인하여 수시준설과 수시관리라는 과업을 안겨주었다. 물을 잘 다스리는 치수능력은 왕과 지방 관리의 정치적 역량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베이징(北京)과 항저우(杭州)를 잇는 1800km 경항(京杭)대운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큰 운하 곁에는 작은 운하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강남의 지역주민들은 수로를 만들어 마을과 마을을 잇고 집과 집을 연결했다. 그리고 수로 주변에는 나무를 심고 작은 다리를 건설하고 누각을 만들면서 주변풍광을 함께 가꾸었다. 그 시절 작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달빛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던 선인들의 여유로움을 뒤로 한 채 일찍 떨어지는 겨울 해를 바라보며 갈 길을 서둘렀다.
 
도두여낙일(渡頭餘落日)
노리상고연(壚里上孤煙)
나루터엔 한 줄기 남은 석양 비끼고
마을에선 한 가닥 연기 피어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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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누각 원진선원]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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