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화 결산] 봉준호·박찬욱 거장 감독 활약에도…천만은 없었다

봉준호 감독 미키17 박찬욱 감독 어쩔수가없다사진각 영화 포스터
봉준호 감독 '미키17', 박찬욱 감독 '어쩔수가없다'[사진=각 영화 포스터]
영화계는 올해도 희비가 교차했다. 해외에서 K영화인들이 연이어 낭보를 전하며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국내 극장 산업은 좀처럼 재기하지 못하며 곳곳에서 곡소리가 이어졌다. 거장의 귀환과 글로벌 신드롬, 천만 영화 부재와 멀티플렉스 구조조정이 한 해 안에 뒤엉킨 2025년 영화계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베니스에서 오스카까지…거장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올해 한국 영화의 국제 성과를 이야기할 때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맨 앞줄에 놓인다.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의 신작인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토론토·시체스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이어가며 작품성과 연출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2026년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예비후보 명단에 올랐고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작품상·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시상식 레이스에서도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국내 최종 관객 수는 290만명대로 손익분기점(약 130만 명)을 넘기며 최소한의 상업성을 확보했고 무엇보다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세계 영화제에서 유효한 브랜드임을 재확인시켰다.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17'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할리우드 신작이자 로버트 패틴슨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 기대치는 높았지만 국내 관객 수는 300만 명 초반대에 머물며 손익분기점으로 거론된 약 3억 달러 규모에는 크게 못 미쳤다. 그럼에도 글로벌 제작 시스템 안에서 봉 감독이 장르와 규모를 어떻게 실험하는지 이후 필모그래피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2025년은 거장 감독의 이름이 더 이상 자동으로 흥행을 보증하지 않는 환경을 확인한 해이면서도 한국 영화의 작가성이 해외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한 해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K팝·무속·OTT…'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연 글로벌 신드롬

극장 밖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또 다른 축의 성과가 나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은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K팝과 한국 전통 무속을 결합한 오컬트 판타지 뮤지컬이라는 콘셉트로 6월 공개된 이 작품은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단숨에 화제작이 됐다. 공개 석 달 만에 영화·시리즈, 영어·비영어권을 통틀어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하며 플랫폼 역사상 최고 흥행작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헌트릭스의 '골든'(Golden)과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은 챌린지·커버 영상으로 재생산되며 전 세계를 돌았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애니메이션 작품상·주제가상·시네마틱 박스오피스 공로상 후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 지명은 이 열풍에 신뢰를 더했다.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사진각 영화 포스터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사진=각 영화 포스터]
 
천만 영화는 사라지고…외화·일본 애니가 채운 상위권

국내 극장가 성적표는 냉정했다. 2025년 1월 1일부터 12월 28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은 1억492만2364명으로 2024년 연간 관객(1억2312만5371명) 대비 1820만3007명(약 14.8%) 줄었다. 12월 '주토피아 2'와 '아바타: 불과 재' 등 할리우드 대작이 연달아 개봉하며 연간 1억 관객선 회복은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한국영화가 시장을 주도하던 팬데믹 이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변화는 '천만 영화'의 부재다. 여름 시장을 겨냥해 개봉한 '좀비딸'이 563만 명으로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됐지만 올해 '천만 영화'는 만날 수 없었다.

그 빈자리는 외화, 특히 애니메이션이 채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는 현재 700만 관객을 넘기며 2025년 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예약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568만 1184명을 동원하며 그 뒤를 이었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연간 박스오피스 1·2위를 동시에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월 개봉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341만 8444명)도 '어쩔수가없다', '보스' 등 한국 기대작과 같은 시기에 개봉해 올해 박스오피스 5위에 안착했다. 메가박스 단독 개봉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선보인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 역시 약 95만 명을 모으며 전체 박스오피스 25위에 이름을 올렸다.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오가며 축적한 팬덤, 스크린에 최적화된 작화·연출, 감정선과 밀착된 액션이 맞물리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영화와는 별개의 독립된 흥행 축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 로고 사진각사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 로고 [사진=각사]
 
폐점·합병·공간 전환…멀티플렉스의 생존 실험

관객 감소와 흥행작 부족은 극장 체인들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CGV는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를 비롯해 순천·목포·송파·연수역·파주야당·창원·광주터미널 등 전국 10여 개 지점의 문을 닫았고 15년간 운영해 온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점도 폐점하며 북미 사업을 정리했다. CJ CGV는 두 차례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역시 근속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메가박스는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형 지점인 성수점 영업을 6년 만에 종료했다.

롯데시네마는 월드타워·합정점 '랜덤스퀘어', 신도림점 공연 프로젝트 등 일부 지점을 체험형 전시·공연 공간으로 전환하며 상영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 추진 소식이다. 롯데그룹과 중앙그룹은 5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영화 제작 감소와 흥행작 부족, 관객 수 저하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모색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사전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고 배우 이순재 빈소에 놓여진 금관문화훈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 배우 이순재 빈소에 놓여진 금관문화훈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원로 영화인과의 작별

2025년은 한국영화사의 한 시대를 장식한 원로 영화인들과의 이별이 이어진 해이기도 했다. 1947년 문화영화 '철도이야기'로 데뷔해 '오발탄', '맨발의 청춘', '육자객', '별들의 고향' 등에 출연한 윤일봉은 12월 8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성일·남궁원과 함께 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대표 미남 배우의 부고는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하루 전인 7일에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토지', '길소뜸' 등으로 사랑받은 배우 김지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약한 그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산업과 정책 전반에 발자취를 남겼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