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전방위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 채비를 하고 있다. 특정 국가·품목을 겨냥한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25% 고율 관세를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움직임이 관보 게재 준비 단계까지 진입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관세는 언제나 정치적 수사로 시작되지만, 실제 피해는 산업과 기업, 그리고 결국 국민경제로 귀결된다.
이번 조치의 본질은 ‘무역 압박’이라기보다 ‘산업 재편 선언’에 가깝다. 미국은 이미 자국 중심 공급망 재구축, 제조업 리쇼어링, 전략산업 보호라는 큰 방향을 분명히 했다. 관세는 그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상당한 구조적 충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고,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다. 자동차, 철강, 이차전지, 반도체 등 주요 산업 상당수가 미국 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단순한 가격 경쟁력 약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한국의 위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철강과 소재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쿼터제와 반덤핑 관세로 미국 시장 접근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추가 관세는 사실상 ‘이중 규제’에 해당한다. 가격 경쟁력을 잃은 한국산 제품은 미국 내 조달망에서 점차 배제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설비 가동률과 고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여파가 제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 둔화는 곧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으로 전이된다. 대미 수출 감소는 달러 유입 축소로 이어지고,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이는 다시 소비자 물가와 실질 구매력에 영향을 미친다. 관세라는 통상 이슈가 거시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경로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산업 전략의 불확실성이다. 기업 입장에서 관세는 단기 비용 문제를 넘어, 어디에 투자하고 어디서 생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판단을 요구한다. 미국이 관세를 상시화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경제의 ‘해외 이전 가속화’라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취해야 할 대응은 단순하지 않다. 단기 대응과 중장기 전략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교·통상 측면에서는 감정적 대응이나 일방적 문제 제기보다는, 제도적 협상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미국의 관세 조치가 국제 통상 규범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면 이를 정교하게 짚어내고, 동맹국이자 주요 투자 파트너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대응과 함께 수출 구조의 다변화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중동, 인도, 아세안, 중남미 등 대체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야 한다. 단순히 시장을 넓히는 차원이 아니라, 현지 수요 구조와 규제 환경에 맞춘 제품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이는 기업 개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통상 인프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급망 전략 역시 재정비가 필요하다. 미국 중심의 블록화된 공급망이 강화될수록, 한국은 ‘선택받는 파트너’가 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핵심 기술과 부품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도체, 이차전지, 첨단 소재 등 전략 산업에서는 단순 생산기지가 아니라 기술 협력과 공동 개발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관세 리스크는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에서 비롯되지만, 대응의 핵심은 결국 국내 산업 체질 강화다. 비용 경쟁력만으로 버티는 산업 구조는 관세 앞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부가가치화, 기술 내재화, 브랜드 경쟁력 강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어떤 통상 환경에서도 반복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25% 관세 움직임은 단기 악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국 산업이 지나치게 특정 시장에 의존해왔던 구조적 취약성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관세는 위기이자 신호다.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유사한 충격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와 방향이다. 단기적으로는 충격을 최소화할 방패를 세우고, 중장기적으로는 더 넓은 시장과 더 단단한 산업 기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관세는 통상 문제로 시작됐지만, 해법은 산업 전략과 경제 체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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