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 작가]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과거 산업혁명 초기, 기계를 파괴하며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거대한 기술의 조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로봇이 벽돌을 쌓고 인공지능이 도면을 검토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이미 건설 현장에도 깊숙이 밀려오고 있다. 이제 인간의 노동은 '효율과 정확성'이라는 차가운 잣대 위에서 기계와 경쟁해야 한다. 생산성의 논리 앞에서는 머지않아 인간이 현장에서 축출될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는 역설적인 지금, 우리가 다시 벼려내야 할 무기는 바로 ‘장인정신’이다. 이는 결코 낭만적인 복고 취향이 아니다. 효율에 밀려 무너져 내리는 건설 현장의 참사를 끊어내고, 기계의 알고리즘이 결코 계산해 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우리의 가장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왜곡된 ‘몸의 습관’이 안전을 삼킨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의 몸에 밴 무의식적인 습관과 성향을 ‘아비투스(Habitus)’라 불렀다. 우리가 현장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전 불감증’은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다.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강요해온 ‘빨리빨리’와 ‘비용 절감’이라는 구조적 압박이 노동자의 몸에 고착화된, 일종의 ‘왜곡된 습관’이다.
아무리 정교한 AI 안전 센서를 부착해도, 노동자의 몸에 새겨진 이 파괴적인 습관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은 단순히 외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계적 작업(포에시스, Poiesis)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와 전문성을 형성하는 실천적 행위(프락시스, Praxis)로 나아가야 한다. 기계가 효율을 높인다면, 장인은 그 효율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넘어선 ‘장인의 자부심’
해외의 선진 사례들은 안전이 단순히 ‘감시’와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자율적 주체성’에서 기인함을 보여준다.
독일 건설 현장의 핵심은 마이스터 제도다. 이들에게 안전은 별도의 수칙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의 완결성을 증명하는 필수 요소다. 마이스터들은 자신의 작업 결과물에 자신의 이름을 거는 자부심을 가지며, 후배 도제들에게 ‘기술보다 먼저 도구를 다루는 태도’를 가르친다. 이들에게 부실 시공과 안전 위반은 곧 장인으로서의 ‘사회적 사망’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형 건설사들은 ‘사고 제로’를 위해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단순히 장비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가족처럼 돌보는 ‘관계의 안전’을 강조한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자와 맥을 같이 한다. 노동자가 현장의 위험을 발견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어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력, 즉 ‘말하는 주체’가 될 때 안전 시스템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일본의 ‘쇼쿠닌(장인)’ 전통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쿠닌은 기술적 수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기질은 정교한 손놀림만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건축물이 사회 구성원의 안녕에 기여해야 한다는 엄격한 윤리적 책임감이 그 중심에 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기계는 벽돌을 똑바로 쌓을 순 있지만, 그 건물이 담아낼 이웃의 삶까지 걱정하며 정성을 쏟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건설 현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최첨단 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동료의 생명을 자신의 예술적 완결성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자의 주체적 태도다.
건설 안전의 새로운 문법, ‘절차탁마(切磋琢磨)’
교육 모델기술이 인간을 추월하는 시대에 건설 노동자가 생존하는 법은 기계보다 빨라지거나 정교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 숙련'의 깊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양의 고전적 지혜인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현대적 안전 교육의 틀로 새롭게 풀어 쓸 필요가 있다. 이 모델은 노동을 단순한 '기능(Skill)'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윤리가 결합된 ‘장인적 실천(Praxis)’으로 재정의한다. 안전 사고를 막는 것은 머리로 외운 수칙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올바른 습관이기 때문이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은 다음의 단계적 성장을 지향한다.
1단계: 절(切) - 끊어내기, 왜곡된 습성의 해체 첫 번째 단계는 ‘끊어냄’이다. 건설 현장에는 오랜 세월 퇴적된 ‘왜곡된 아비투스(습속)’가 존재한다. “어차피 우린 막노동꾼이야”, “사고는 운이야”라는 패배주의와 안전불감이 그것이다. ‘절(切)’의 과정은 노동자가 스스로를 ‘위험을 감수하는 말단 인력’으로 비하하는 인식의 사슬을 끊어내는 공정이다. 자신의 존재를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로 새롭게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다.
2단계: 차(磋) - 깎아내기, 타성적 습관의 재구성 두 번째는 일상 속에 굳어진 위험한 작업 습관을 ‘깎아내는’ 과정이다. 장인은 스승의 몸짓을 수만 번 관찰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나쁜 버릇을 깎아낸다. 이 모델에서의 ‘차(磋)’는 강의실 교육이 아니다. 현장에서 동료와 서로의 작업 자세를 피드백하고, 미세한 불량의 징후를 잡아내는 ‘손의 지식’을 몸에 새기는 과정이다. 타성에 젖은 손길을 깎아낼 때 비로소 안전한 숙련이 드러난다.
3단계: 탁(琢) - 쪼아내기, 장인적 전문성의 심화 세 번째는 자신의 일에 담긴 가치를 보석처럼 ‘쪼아 만드는’ 단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르곤(Ergon, 고유한 기능)’의 회복이다. 내가 쌓는 벽돌 한 장이 누군가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에서 숭고한 책임으로 격상된다. 숙련된 기술에 윤리적 자부심이 더해지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순 기능공을 넘어선 ‘장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4단계: 마(磨) - 갈고닦기, 함께 만드는 안전 공론장 마지막 단계는 나만의 숙련을 넘어 동료와 함께 현장의 문화를 ‘갈고 닦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행위(Action)’의 영역이다. 노동자가 현장의 위험 요소를 발견했을 때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동료와 함께 안전 규범을 만들어가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단계다. 혼자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책임지는 공동체의 문화를 함께 문지르고 닦아내며 빛내는 과정이다.
반복과 책임의 수련인 모델의 저변에는 일본 쇼쿠닌 전통의 ‘반복·관찰·모방·책임’ 원리가 흐른다. 쇼쿠닌들에게 안전은 별도의 공부가 아니라, 매일 도구를 닦고 바닥을 쓰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 깃든 경건함 그 자체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은 노동자를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피교육자'로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에 새겨진 낡은 습관을 스스로 점검하고 수정하며, 동료와 함께 안전이라는 '공동의 작품'을 빚어가는 장인적 주체로 대우한다. "무엇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책임으로 하느냐"를 묻는 이 교육 모델은, AI 시대 건설 현장이 나아가야 할 가장 인간적이고도 강력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절차탁마(切磋琢磨) 교육 모델이 현장에 뿌리내린다면 우리는 세 가지 차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수동적인 안전 준수를 넘어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알리고 동료를 지키는 ‘안전 참여 행위’가 활성화될 것이다. 둘째는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이다. 자신의 일을 ‘막노동’이 아닌 ‘장인의 실천’으로 재인식할 때, 노동자는 비로소 직업적 자부심과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는 건설 노동자를 ‘도시의 안전을 떠받치는 장인’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의 압박이다. “당장 오늘 작업량을 채우기도 바쁜데 언제 교육을 하느냐”는 현장의 냉소는 뼈아픈 현실이다. 또한, 현재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OSHE) 체계가 하드웨어(시설·장비) 중심에 치우쳐 있어, 절차탁마와 같은 ‘인간 중심의 소프트웨어 교육’에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운 법적 경직성도 해소해야 할 숙제다.
일본의 쇼쿠닌 모델을 차용함에 있어서도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 일본 특유의 경직된 위계 문화를 그대로 이식하기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민주적 소통 방식을 결합한 ‘한국형 장인 모델’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일부 현장을 대상으로 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이 모델의 사고 감소 효과를 정교하게 검증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관리비 항목에 ‘문화 및 참여형 교육비’를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등의 법제 개선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모바일 앱이나 VR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디지털 절차탁마 모듈’을 개발해 바쁜 현장에서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은 단순히 사고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에 긍지를 느끼고, 동료와 함께 안전이라는 가치를 갈고 닦는 과정 그 자체다. AI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현장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장인의 마음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이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건설 현장을 ‘존엄한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가는 실천적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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