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
국회에서 개헌안이 발의되면서 제10차 개헌이 성사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전문을 비롯한 3개 사항에 대해서만 개헌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고, 나아가 제10차 개헌의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87년 9차 개헌까지 39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다시 39년 세월이 흐른 이후에 10차 개헌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축적된 개헌 쟁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1987년 이전 39년보다 이후 39년 동안 대한민국의 변화는 더욱 컸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헌법을 위해 요구되는 사항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고려하여 우원식 국회의장은 2024년 11월 초부터 ‘국민 미래 개헌 자문위’를 구성해 개헌을 준비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개헌을 국정과제 1호라고 공언했는데, 이렇게 ‘약소한’ 개헌안이 발의된 것은 왜일까?
그 밖에도 개헌이 실패한 원인으로는 2017년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대선 블랙홀이 개헌 블랙홀을 압도했다고 할 정도로 정치권의 관심이 개헌보다 대선에 집중되었던 것이 지적되기도 하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은 야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이를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자 이후 개헌에 대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헌에 대한 진정성 부족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번 개헌안 발의는 2017년, 2018년 당시에 비해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일단 헌법 명칭을 한자에서 한글로 바꾼 것 외에 포괄적인 헌법개정안 발의를 포기하고 내용상의 변경은 세 가지로 한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첫째, 헌법 전문에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을 명시, 둘째, 계엄선포에 대해 지체 없이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한 것, 셋째, 국가의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의무에 대한 규정을 두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개헌사항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39년을 기다린 제10차 개헌이 맞는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제10차 개헌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개헌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개헌이 국민들이 원하는 개헌일까?
시대에 뒤떨어진 대한민국의 헌법을 시대정신에 맞춰 개혁하기 위한 개헌이라면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첫째, 2017년과 2018년 개헌의 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 해체에 대한 요구가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없는가? 오히려 권력의 집중과 오남용의 우려는 더 커졌는데 이를 전혀 도외시한 개헌이 시대정신에 맞을 수 있는가?
둘째, 현 체제는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충분히 민주화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개발독재의 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고 내각 중심이 아닌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맞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도 시대에 맞는 국가 시스템의 합리화가 절박하다.
셋째, AI혁명을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 적절한 대응이 시대적으로 절실한 과제이다. 당장은 법률적으로 대응해야 하겠지만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이를 비롯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시스템의 개혁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컨대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분권 강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환경문제와 연결하여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 세대 간 갈등을 조율하기 위한 지속가능발전 필요성 등도 헌법에 규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것이며, 그 밖에도 인권보장의 개선을 위한 사항들이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 예컨대 헌법 재29조 재2항 이중보상금지는 제3공화국 당시 위헌 판결을 받았던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를 유신헌법에 규정했던 조항으로서 삭제되어야 할 것이며, 정보기본권 등 새롭게 명문화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모든 개헌사항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자칫 또다시 개헌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담겠다는 적극적인 노력도 없이 헌법 전문이나 개정하겠다는 것에 국민들이 동의할까?
일단 중요 쟁점들에 대한 기초 연구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여야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문제지만 그건 합의가 된 사항에 대해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항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개헌하고, 그 외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해 나가면 된다.
이를 위한 단계적 개헌 필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발의된 개헌안은 단계적 개헌의 시작점으로서도 매우 미흡할 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문제도 적지 않게 내포하고 있다.
헌법 전문의 개정으로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넣으면 1987년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6월 민주항쟁을 빼도 되는 것인가?
계엄선포의 요건 강화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계엄이 선포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즉시 효력이 상실되도록 하는 것은 전쟁 등 긴급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6⋅25도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다. 이미 그전에 국회의 기능은 상실되었고 국회의원 소집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나?
한번에 모든 개헌사항을 처리하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첫 단추가 되는 제10차 개헌을 대충 해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이 차후의 개헌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없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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