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하노버 박람회'가 우리 산업에 던진 교훈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지난주 세계 양대 기술 전시회인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소비자전자쇼)는 소비자 기술 분야의 세계 최대 전시회이고, 매년 4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산업 및 기업 기술 분야의 세계 최대 전시회다. 기술이 기업은 물론 국가의 미래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 패권시대가 심화되면서 세계적 기술 전시회가 제시하는 미래 트렌드에 대한 숙지는 핵심 성공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기술을 모르면 국가와 기업 경영이 어려운 시대다. 그런 면에서 최근 우리 기업인뿐만 아니라 각계 인사들의 CES 참관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건 과열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도층의 기술 이해도 증진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우리나라가 올해 CES에는 약 850개 기업이 전시업체로 참가하고 1만5000명에 달하는 많은 참관객이 방문한 반면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70여개 전시업체, 2000명이 채 안 되는 참관객으로 CES 대비 참여도가 많이 떨어지는 상황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의 90%를 맡고 있는 제조업의 70~80%가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주요 대상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품임을 감안할 때,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대한 우리 기업 및 정부의 관심과 참여를 CES 못지않게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올해로 79회를 맞은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3000여 개의 전시업체, 11만여 명의 참관객이 참가하여 작년 전시업체 4000개사, 참관객 12.5만명 대비하여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는 미·이란 전쟁, 항공·대중교통 파업 등 어수선한 상황의 여파로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코로나 팬데믹 직전 2019년에 6000여 개의 전시업체, 21.5만명의 참관객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된 규모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급감된 규모가 회복세에 있고 온라인 참관이 대폭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독일 경제의 부진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 개막 연설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현재 독일 경제의 부진에 대한 진단과 함께 미래 해법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했다. 독일 정부 수반인 총리가 매년 빠짐없이 하노버 산업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산업 정책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이 여전히 성공적인 산업 강국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기술 진보와 경제적 기회를 논의하는 글로벌 대화의 장’으로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신호를 보내야 하고 AI·디지털 대전환, 에너지 대전환을 통해 미래의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독일 제조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비용 급등과 함께 규제, 인력 부족, 글로벌 경쟁 압력에 직면한 상황에서 나온 메시지다. 그는 미·이란 전쟁으로 심화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여 디젤, 휘발유, 항공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독일의 최우선 과제이며, 유럽 파트너 및 관련 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하여 안정시키겠다고 역설했다.
 
산업 정책 측면에서 산업 AI 대전환과 이를 위한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독일은 산업 AI를 제조업 경쟁력 제고의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는 AI가 산업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 자원 최적화,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며 경제 활동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EU 차원에서 생산성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산업 AI에 대한 과감한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산업 AI는 일반 소비자 대상 AI와는 성격이 다르며 과도한 규제가 유럽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핵심 주제였던 산업 AI, 자동화, 디지털 트윈, 로봇 대전환과 직접 연결된다. 독일 제조업이 위기 속에서도 기술·무역·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는 연설이었다. 우리 산업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피지컬 AI 중심의 자동화 및 디지털화, 에너지 및 산업 인프라, 탄소중립 중심의 지속가능성, 안전·보안 및 신기술의 4대 테마로 구성되었다. 이 전 영역을 관통하는 최상위 키워드는 단연 산업 AI였다. 산업 AI는 일반 생성형 AI를 제조업에 단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생산, 설비, 품질, 에너지, 공급망 등 전 분야 데이터를 연결해 산업 현장의 의사결정과 실행을 최적화하는 AI 체계를 의미한다. 산업 AI가 더 이상 데모가 아니라 제조 경쟁력의 핵심 수단 및 도구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 전시회였다. 이는 향후 제조업 경쟁력은 ‘좋은 장비를 많이 보유했나’보다 ‘데이터·공정·장비·작업자를 AI로 얼마나 통합 운영하는가’에 의해 결정됨을 의미한다. 즉, AI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제조기업의 운영체제(OS)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본 박람회가 제시한 산업 AI는 크게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의 양대 축으로 나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첫 번째 축은 ‘에이전트 AI’다. ‘대리인’이라는 의미 그대로 사람을 대리해서 주어진 임무에 따라 자율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AI 시스템이다. 기존 AI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권고했다면, 에이전트 AI는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 여러 시스템을 호출하고 일정 범위 내에서 실행까지 수행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산업 지능의 가능성을 열다’를 주제로 내세우며 미래 제조업은 신뢰 기반의 인간 지능과 AI의 결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례로 워크(Work) IQ, 패브릭(Fabric) IQ, AI 에이전트를 통해 작업자 협업, 자산·생산·공급망 가시성, 현장 의사결정을 연결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인 애저(Azure) AI 기반의 제조 에이전트 기능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링, 자동화, 운영 프로세스를 더 통합적으로 수행하려는 방향이다.
 
두 번째 축은 피지컬 AI다.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공장 설비처럼 현실 세계의 물리적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시스템이다. 본 박람회는 피지컬 AI를 ‘기계, 플랜트, 로봇 등 물리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AI’로 설명했고, 올해 이 주제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 공장(Factory of the Future)’ 데모는 이 트렌드를 잘 보여주었다. 당사는 지멘스, 엔비디아, 헥사곤, 쿠카 등과 협력하여 AI 지원 제품설계안을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고 이후 실제 제조 셀에서 실행되는 전주기 통합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쿠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로보틱스, 클라우드, AI가 결합할 때 미래 제조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었다. 당사는 로봇이 단순 반복 장치가 아니라 클라우드와 AI에 연결된 제조 실행 주체가 되는 방향을 강조했다. 벡호프도 거대언어모델(LLM)과 전통적 기계제어를 결합해 실제 모션 시퀀스를 제어하는 피지컬 AI를 전시했다. 당사는 ‘TwinCAT 3 CoAgent’를 통해 AI 에이전트가 자동화 생애주기와 기계 제어에 관여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제조 AI의 최종 승부처는 ‘문서를 잘 쓰는 AI’가 아니라 실제 장비를 안전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AI이며, 이는 휴머노이드, 산업용 로봇, AMR(자율이동로봇), 검사장비, 공작기계, 물류 자동화에 모두 적용된다.
 
세 번째로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트윈이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가 현실 세계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학습·시뮬레이션·검증을 수행하는 가상 복제 디지털 공간이다. 과거 디지털 트윈은 주로 설비나 공장을 3차원으로 시각화하거나 시뮬레이션 하는 도구였으나, 본 전시회에서는 AI의 학습, 검증, 의사결정, 로봇 훈련을 위한 기반 인프라로 제시되었다. 다쏘시스템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통해 다쏘의 버추얼 트윈(Virtual Twin)과 엔비디아의 AI 인프라를 결합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엔비디아도 옴니버스를 통해 산업 디지털 트윈 안에서 피지컬 AI를 시뮬레이션·최적화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실제 공장에서 테스트하기 전에 가상환경에서 로봇과 공정을 검증해 개발 기간, 비용,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핵심 메시지는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이 단순한 ‘설비 자동화’가 아니라 ‘AI가 이해하고 판단하며 실행할 수 있는 산업 운영체계’로서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를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제조업의 당면과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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