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Spiritual Asia) ⑬]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숨겨진 뿌리, 조로아스터교

  • 인류 문명을 바꾼 페르시아의 불꽃

인류 문명의 역사를 움직여 온 강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강이다. 나일강과 황하,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수많은 도시와 국가,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강이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류의 정신과 가치관, 종교와 철학을 움직여 온 사상의 강이다. 그리고 그 강의 상류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고대 페르시아의 한 예언자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조로아스터, 또는 자라투스트라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직간접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현대 사회의 윤리와 법, 정의와 역사관은 이 세 종교가 남긴 흔적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종교의 사상적 뿌리를 깊이 추적해 올라가면 고대 이란 고원에서 타오르던 조로아스터교의 불꽃과 만나게 된다. 물론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각각 독립된 계시와 전통, 고유한 신학 체계를 가진 위대한 종교들이다. 그러나 문명사는 언제나 교류와 융합의 역사였다. 사상은 고립된 채 성장하지 않는다. 서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 크고 깊은 문명으로 발전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신도 수는 많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인류 문명의 깊은 지층 속에 스며들어 수천 년 동안 서구와 중동 세계의 정신을 형성해 온 거대한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기원전 6세기, 중동 세계는 거대한 격변기를 맞이한다. 당시 패권국이었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주변 민족들을 정복하고 지배했다. 유대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었다. 수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종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바빌론 유수다.

유대 민족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었다.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 자체가 흔들리는 문명적 위기였다. 하느님은 왜 우리를 버리셨는가. 정의는 왜 침묵하는가. 선한 사람들은 왜 고난을 겪는가. 유대인들은 절망 속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기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키루스 대왕이다. 그는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설하여 고대 세계 최대 규모의 제국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 관용과 문화적 포용을 실천한 통치자였다. 기원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한 뒤에도 그는 피정복 민족을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 민족의 전통과 종교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다.

특히 바빌론 유수로 고통받던 유대인들에게 귀환을 허락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지원한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해방자로 기억했다. 실제로 구약성경 이사야서는 이방인 군주인 키루스를 특별한 사명을 받은 인물로 묘사할 정도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민족의 귀환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가 역사적으로 가장 깊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역사학자와 종교학자들은 이 시기를 전후해 유대교의 사상 체계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천사와 악마, 최후 심판, 죽은 자의 부활, 메시아에 대한 기대, 역사의 종말과 완성이라는 개념들이 보다 선명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거대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선의 원리인 아후라 마즈다와 악의 세력인 앙그라 마이뉴의 투쟁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인간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틀이었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희망이 조로아스터교의 핵심이었다.
 
이미지챗GPT 제작
이미지=챗GPT 제작


이러한 세계관은 후대 유대교의 종말론적 사상과 상당한 공명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다시 기독교로 이어진다. 기독교는 사랑과 구원, 희생과 용서라는 새로운 차원의 복음을 제시했지만 그 배경에는 이미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유대교의 역사적 토양이 존재했다.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최후 심판과 부활, 구세주의 도래라는 개념들은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슬람교 역시 마찬가지다. 7세기 아라비아에서 등장한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신앙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 천사의 존재, 악의 세력에 대한 경계, 정의로운 자의 승리라는 구조는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과 적지 않은 접점을 보여준다. 이후 이슬람 문명은 페르시아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세계 최고의 학문과 철학, 과학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결국 조로아스터교는 신도 수로 평가할 수 없는 종교다. 그 영향은 강물처럼 흐르며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문명을 적셨다. 우리는 그 흔적을 유대교에서 발견하고, 기독교에서 발견하며, 이슬람교에서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생각해 보면 현대인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로아스터교의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정의는 결국 승리해야 한다는 믿음,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윤리, 선과 악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원칙, 역사는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조로아스터는 인간을 운명의 노예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생각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존재였다. 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 역시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세 가지 가르침을 남겼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수천 년 전 등장한 이 세 문장은 오늘날 AI 시대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 정보와 혐오 표현, 극단적 갈등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왜곡된 생각은 왜곡된 언어를 낳고, 왜곡된 언어는 결국 왜곡된 행동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올바른 생각과 진실한 말, 책임 있는 행동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

AI는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선한가를 판단하지는 못한다. 기술은 인간에게 능력을 줄 수는 있어도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문명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가치이며, 가치는 결국 인간 정신의 문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동양의 오래된 영성과도 만난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평생 인간 안에 깃든 하늘을 찾으려 했다. 그는 진리는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길은 여럿이라고 보았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신 전통을 담고 있는 대종교 역시 인간을 하늘의 뜻을 품은 존재로 이해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흐르는 홍익인간 정신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늘과 인간이 실천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동시에 강조한다.

물론 조로아스터교와 대종교는 서로 다른 수천년의 역사와 문화, 다른 언어와 다른 문명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고 진리와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점에서는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늘을 바라보는 방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한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인류 영성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종교는 달라도 인간은 같다. 언어는 달라도 양심은 같다. 문명은 달라도 진리를 찾고 정의를 추구하며 선한 삶을 꿈꾸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3000년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작은 불꽃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그 불꽃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속에서 살아 있고, 동양의 수많은 영성 전통 속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생각은 선한가. 당신의 말은 진실한가. 당신의 행동은 정의로운가.

인류 문명의 위대한 종교들은 서로 경쟁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존재했다. 조로아스터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고대 종교를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왜 진실을 사랑하는지, 왜 정의를 갈망하는지, 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그 작은 불꽃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도 인류 문명의 등불로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엄숙하게 말하고 있다.

문명의 미래는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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