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담] 'E'는 틀렸고, 'B'도 정답은 아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사진=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공사(KTO)가 기획재정부의 2025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양호(B)' 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최하위인 '아주미흡(E)' 성적표를 받아든 지 불과 1년 만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C등급만 받아도 선방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지만, 공사는 단숨에 세 계단을 수직 상승하며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접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축하를 앞서는 의구심이었다.

과연 관광공사의 조직 역량이 1년 만에 E등급 기관에서 B등급 기관으로 환골탈태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지난해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했던 것이고, 아니라면 올해 평가는 지나치게 후해진 셈이다. 어느 쪽이든 현재의 공공기관 평가 체계가 현장의 맥락을 얼마나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난해 E등급은 관광업계에 적잖은 충격파를 던졌다. 당시 관광공사는 정치권의 외풍 속에 장기간 기관장 공백 상태를 겪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 항공 공급 정상화는 더뎠고, 고환율 등 거시 경제 지표도 악화일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국납부금 등 관광진흥개발기금 재원 구조마저 요동쳤다. 현장은 불가항력적인 외부 변수와 사투를 벌였지만, 평가표는 냉혹한 '결과 값'만 들이밀었다.

물론 공공기관은 마땅히 성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성과로 규정할 것인가'다.

관광은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돌려 생산량을 찍어내는 제조업이 아니다. 방한 외래객 1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숙박비와 항공권 결제액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통시장, 골목상권, 지역 축제를 거쳐 국가 브랜드 제고와 재방문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무형의 자산이자 종합산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적인 파급효과는 1년 단위의 정량 평가표 바깥에 버려져 왔다. 지난해 E등급 판정 직후 업계 안팎에서 "현장이 보이지 않는 평가"라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올해 B등급 반등의 배경을 살펴보면 씁쓸함은 더해진다. 기재부는 관광공사의 인공지능(AI) 기반 혁신, K-콘텐츠 연계 마케팅,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이 성과들은 지난해에는 전무했다가 올해 갑자기 솟아난 것일까. 아니면 지난해 잣대로는 걸러내지 못했던 현장의 혁신을 올해 들어서야 뒤늦게 포착한 것일까.

이번 B등급은 분명 의미 있는 반등이다. 기관장 공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묵묵히 현장을 지켜낸 실무진의 피땀 어린 결실이며, '낙제 기관' 꼬리표를 떼어낸 값진 명예 회복이다.

다만 이번 결과를 단순한 '성공 신화'로 소비하고 끝내선 곤란하다. 지난해의 E등급이 던진 질문도, 올해의 B등급이 남긴 질문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평가 체계가 관광산업의 특수성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 말이다. 

평가는 현실을 진단하는 지표여야지, 현실을 왜곡하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광은 숫자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숫자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산업이다. 그래서 평가의 잣대 역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어야 한다.

지난해의 'E'가 억울한 오명이었듯, 올해의 'B' 역시 완벽한 정답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적표에 찍힌 알파벳 한 글자가 아니다. 그 이면에 가려진 현장의 분투와 산업의 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다. 그것이 국가 관광 컨트롤타워를 향한 제대로 된 평가이자, 정부가 응답해야 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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