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6년 만에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수출.내수.투자 모두 끝없는 추락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이미 얼어붙은 상태에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덥치면서 수출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위기극복의 고육책인 기업.금융구조조정은 단기간에 생산.소비.투자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량 실업사태와 기업도산 등 환란 당시에 겪었던 현상들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려면 경제 주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으며 정부는 재정확대를 비롯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비.투자.수출 모두 암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하는 이유는 수출과 소비, 투자 모두 심각한 부진상태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은 세계 경제 둔화와 함께 증가세가 크게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정부도 내년 수출을 한자릿수 증가에 그칠 것으로 관측한 상태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실장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며 "우리 수출의 둔화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져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대한 전체 기여도가 가장 큰 소비도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자산가치 폭락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가계부채 부담이 늘면서 가계의 실질소득도 줄어 경제주체들이 지갑을 더 닫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10월 취업자 증가 폭은 9만7천 명으로 3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사정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특히 건설사를 중심으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 고용불안은 더욱 심해지고 이는 소비 위축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설비.건설투자 부진 역시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소로 꼽힌다. 설비와 건설투자액 증가율은 올해 1~9월중 작년 같은 기간보다 0.4% 늘어나는데 그쳐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나타냈다.
게다가 설비투자 선행지표인 국내 기계수주액은 전년 동월대비로는 9월에 33.4% 줄었다. 9월 감소폭은 2003년 3월의 46.6% 이후 최대다. 9월 건설수주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4%가 감소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내년에도 소비가 늘어나거나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고용기반이 많이 흔들리고 있어 성장률이 얼마나 낮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경제주체 모두 `혹한기'
전분기 대비 GDP성장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성장률 둔화와 완전히 다르다. 성장률 둔화는 생산규모의 증가속도가 느려지기는 하지만 규모 자체는 계속 확대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장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생산규모 자체가 전분기보다 줄었다는 의미다.
마이너스 성장은 경기 하강 속도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전분기 대비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은 2003년 1분기(-0.4%)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다. 2003년에는 카드사태로 인해 신용이 위축되면서 소비가 크게 줄어 성장률이 뒷걸음쳤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일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 경기가 더 얼어붙을 수 있고 대기업, 중소기업 등 가릴 것 없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생산활동이 위축되면서 기업과 가계의 실질소득과 수익이 줄어들고 고용 불안이 심화해 실업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면서 기업 도산사태 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기에 민감한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 서민들은 더욱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은 관계자는 "세계 경기 둔화 속에서 우리 경제가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상당히 안좋은 징조이고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2분기 연속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보일 경우 경기침체로 표현하는데, 경기침체의 늪에 우리 경제가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재정지출 확대 등 대책 서둘러야"
이를 극복하려면 경제주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며 결국 정부가 나서서 대대적인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유병규 본부장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간다면 우리도 전대미문의 대책이 시급해진다"며 "앞으로 1∼2년 가량 경기가 나빠질 것을 감안해서 어느 정도까지 나빠질 것인지, 이를 막기 위한 재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담은 종합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당장 국회에 묶여있는 정부의 경기 부양 대책이 빨리 시행돼야 한다"며 "내년 초반 이후 이 돈이 풀리게 되면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된다"고 경고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마이너스든 저성장이든 금리를 낮추고 재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며 "취약한 부분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과 그를 전제로 한 지원도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오문석 실장은 "정부는 구조조정 등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재정 지출을 확대해 투자나 고용 창출에 기여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는 물가가 안정 추세여서 인하 여지가 있지만 금리를 인하한다고 소비나 투자가 늘지는 않는다"며 "다만 경제 주체의 이자 부담이 줄어 금융시장 안정 측면에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