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양일간에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21개국 정상회의가 있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고 지나갔으나 이번 16차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정상선언문’의 의미는 실로 크다.
제일 큰 의미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아시아 국가들과 미주국가들이 문자 그대로 태평양공동협력체를 이룩하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종교∙언어∙문화∙경제수준∙정치체제 등이 다양한 이들 태평양 오른쪽 국가들과 왼쪽 국가들이 과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까라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해왔던 터라 이번 정상선언문은 가히 역사적일 것 같다.
즉 내년까지 APEC 21개 국가들을 다 묶어서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하는데 거쳐야 될 과제들을 총 망라하는데 합의를 봤다. 만일 이 과제들이 정교하게 제시되어 각국이 자유무역을 위한 예비과정을 거친다면 APEC은 자유무역지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큰 의미는 정상들이 ‘특별성명’이라는 제목을 달아 지금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 쓰나미에 공동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사실상 금융위기공동대처 아이디어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라고 하여 지난 2000년 5월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동남아국가들과 한∙중∙일 등 13개국의 재무장관들이 모여 통화스와프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자금 공급국 중 한 나라가 조정자가 되어 각 회원국이 얼마씩 공여하겠는가를 정하고 이를 거두어 필요국을 도와주는 식이다. 물론 일정기간 후 이를 변제해 주어야 하는 책임도 맡게 된다.
그런데 동 제도가 양자간의 소규모 스와프 관계를 맺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는 회원국들의 자금공급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회원국들의 자금공여강제규정이 없다는 것,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까다로운 융자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나온 특별성명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치앙마이에 참여한 13개국 뿐만 아니라 아태 21개국이 이러한 통화스와프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물론 금융 쓰나미에 대처할 21개국의 거시경제적, 금융개혁적 공동노력을 구체화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세 번째 의미는 APEC 정상들이 이번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보호무역주의를 결연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무역장벽을 추가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지난 94년 보르고에서 채택한 역내 자유무역의 실천(2020년까지)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상에서 도출한 APEC 정상선언의 세 가지 내용이 과연 실현성이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실현성이 있을 수 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특히 내년 의장국이 싱가포르이고 내후년 의장국이 일본인 점을 감안한다면 지역경제통합, 금융위기공동대처, 그리고 자유무역의 실현이라는 3대 과제를 충실하게 밀고 나가리라 예상된다.
여기에 추가하여 내년 초 등장하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에 거는 기대를 들 수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비록 이번 페루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평소에 강조해 왔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질서의 변화”는 내년초서부터 발동이 걸리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마치 지난 93년 새로 등장한 미국의 젊은 클린턴 대통령이 당시 APEC 정상들을 설득하여 그 어려웠던 우루과이라운드를 결론으로 유도했듯이 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