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폭등과 금리 인상으로 피해를 본 엔화대출자들이 한국은행에 이어 금융 감독당국과 시중은행을 상대로도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엔화대출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대출자들은 외화대출 만기규제 철폐, 과도한 금리인상 자제, 꺾기 행위 근절 등을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이미 한은이 대출 만기규제를 풀어준 만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나머지 2가지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적법한 기준에 따라 금리를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고 금감원은 금리 조정 등은 소관 업무가 아니라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 일년새 금리 3배 폭등…은행권 담합 의혹 = 지난 2006년 엔화대출이 급증하던 당시 1.9~2.5% 수준을 유지하던 대출금리는 지난 3월 이후 4.1~5.0%로 오른 뒤 10월 들어서는 7.0~8.0%까지 치솟았다.
은행들은 원·엔 환율이 오르고 조달비용이 상승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자들은 올 상반기 대출 만기 연장시 은행들이 추가 금리를 요구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엔화대출 만기가 집중됐던 지난 3월에는 환율도 안정적이었고 외화 차입 여건도 나쁘지 않았는데 금리를 2배 가량 올렸다는 것이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700~800원대를 유지하다가 8월 953.03원, 9월 1060.60원, 10월 1327.10원 등 하반기 들어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에는 1572.86원까지 치솟았다.
정종호 엔화대출자 모임 공동대표는 "가입 당시 2.15%였던 대출금리가 지난 3월 만기 연장 때는 4.5%로 뛰었다"며 "당시에는 환율이 오르지도 않았고 조달비용도 제로금리에 가까웠는데 금리를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하반기 들어 환율이 올라 조달비용이 다소 비싸졌다고 하더라도 일년새 금리를 3배 이상 올릴 수는 없다"며 "은행들이 담합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자들은 은행이 만기를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은행 상품 가입을 종용하는 '꺾기'도 자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율 폭등으로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에서 만기 연장에 실패할 경우 파산할 수 밖에 없어 은행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것이다.
안산에서 무역업체를 운영 중인 한 모(57)씨는 "지난 10월 엔화대출 만기 연장을 신청하기 위해 은행 지점을 방문했는데 직원이 추가 담보 제시와 적금 가입을 강요했다"며 "적금은 들었지만 담보가 없어 결국 추가 금리를 적용받았다"고 말했다.
대출자들은 금감원에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행정소송 및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하는 한편 은행에 대해서는 부당이득 환수 소송을 준비 중이다.
◆ 금감원 "해줄게 없다" = 엔화대출자 모임은 4일 문종진 금감원 분쟁조정국장을 만나 이미 신청해놓은 분쟁조정 건에 대해 설명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감원 측은 소관 업무에 벗어나는 요구사항이 많아 들어주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문 국장은 "면담 일정이 잡힌 만큼 민원 신청인의 의견과 해당 금융기관의 의견을 모두 청취한 후 조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당사자 간의 자율 조정으로 끝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대출금리를 조정하고 담보 제시 요구를 막아주는 건 금감원의 소관 업무가 아니다"며 "사실상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환율이 오르면 금리도 따라 오르게 돼 있다"며 "금리가 불만이라면 한은이나 해당 은행에 직접 찾아가 해결하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문 국장은 "다만 대출 과정에서 실제로 은행이 꺾기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잭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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