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채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공포에 휩싸였던 금융시장이 생각보다 좋은 경제지표에 환호하고 있다. 덕분에 세계 증시는 빠른 속도로 반등했고 금리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세 자리 수에 머물던 국내 증시도 3월 초를 기점으로 오르기 시작해 단숨에 1400선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 지수도 6500선에서 8500선까지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생각보다 좋은 경제지표에 성장률 상향 조정이 계속되자, 이제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생겼다. 이른바 출구전략이라고 불리는 긴축 통화정책으로 전환 논의가 그것이다. 즉, 엄청나게 쏟아부은 각국 재정지출과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다시금 버블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런 부작용이 생기기 전에 유동성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론적으로 유동성이 많이 풀리게 되면, 단기적으로 자산가격에 버블을, 중장기적으론 일반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리게 된다. 이런 출구전략 논의엔 직전에 있었던 각국 주가 상승과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이 자리잡고 있다.
유동성 조절에는 거의 반드시 통화정책이 동원되고, 통화정책은 채권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 논의는 곧 각국 국채금리 상승을 초래한다. 그럼 선제적인 긴축 통화정책에 대한 논의는 현재 상황에서 타당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다시 한번 상반기 상황과 하반기 경제여건을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세계 경제는 우리가 애초 걱정했던 경제ㆍ금융 위기를 완벽히 극복한 것일까. 지금 당장, 혹은 몇 개월 안에 강력한 부양정책을 조금 약화시킨다고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자력으로 원래 성장 사이클로 복귀할 수 있을까.
우선, 여전히 각국 경제 상황은 과거 평균적 수준 보다 크게 부진한 상태임을,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임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재정지출은 한계에 부딪쳐 신용평가사마다 신용등급 하향을 경고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벌써 세금인상안을 내놓기도 했다. 통화정책은 금리가 제로에 도달해 명목금리를 더 이상 조정할 수 없게 됐다. 채권 직매입도 과잉유동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저항에 직면해 있다.
이쯤 해서 경기가 자생적 성장 신호를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증거는 없다. 미국은 소득과 소비가 격감한 가운데 저축률이 1990년 이후 사상 최고로 올라섰다.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고용은 여전한 일자리 부재로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ㆍ유가 상승 역시 가처분 소득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직 정부로부터 세금환급만이 소득 저하를 막고 있으나, 규모로 보면 역부족이다.
중국은 어떤가.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줄어서 내수부양에 주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고정자산투자와 소매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수부양책만으로 견딜 수 있을 지, 수년여간 지속된 수출위주 경제가 단숨에 내수로 전환될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중국 경제는 그렇다고 해도, 최종 소비처였던 미국 소비는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다른 행성을 만들자고 주장했지만, 지금 과학기술로는 오직 지구 개발만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비관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경기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최소한 직전에 목격했던 최악은 다시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금융변수라는 것이 기대 함수이기 때문에 상반기에 생각보다 좋았던 지표로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다. 강력한 경기 회복 징후를 관찰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ㆍ통화 부양책 여력도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당분간 주가가 부진하고 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이 몇 달 동안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정책당국이 다시 한번 특별한 묘수를 생각해 낸다면, 주가와 금리 반등은 조금 더 일찍 다가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회복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면, 이제는 문제 해결을 위해 회복을 기다리는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는 상황이지만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한 투자자는 그 성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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