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될 게 아니면 집에 가서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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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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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권 IT업계의 정신적 지주…'에이서' 창립자 스전룽

   
 
스전룽 전 에이서그룹 회장
지난 8월 대만 컴퓨터 제조업체 에이서(ACER)가 8년만에 다시 한국에 진출했다. 국내에서 브랜드 인지도는 여전히 낮지만 업계에서는 에이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시 돌아온 에이서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에이서는 지난해 데스크톱 PC 판매실적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노트북과 넷북 판매 역시 각각 세계 2위, 1위를 차지했다.

에이서는 이미 유럽 PC시장 최강자로 꼽히고 대만에서도 아수스와 패권을 다투고 있다. 세계 최대 컴퓨터 메이커 휴렛팩커드(HP)와는 격차가 상당하지만 델과는 근소한 차이로 2위 다툼이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에이서가 이미 델을 제쳤다는 평가도 들린다.

에이서가 세계 3대 PC업체로 성장한 데는 창립자인 스전룽(施振榮) 전 회장의 공이 크다. 그의 유연하고 도전적인 경영 철학과 강력한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특히 기업통합과 리스크통제, 글로벌화와 관련한 전략은 경쟁사인 중국 레노버를 압도할 수 있었던 비결로 손꼽힌다. 에이서는 베이징올림픽 파트너십 경쟁에서도 레노버를 따돌렸다.

스 전 회장의 리더십은 위기 때마다 진가를 발휘했다. 때문에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중화권 정보기술(IT)업계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 받고 있다.

에이서가 맞은 첫번째 위기는 1991년 찾아왔다. 에이서는 당시 몸집이 커지면서 글로벌시장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했다. 경영실적은 서서히 뒷걸음쳤고 1991년에는 급기야 8700만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된다.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 적자였다.

스 전 회장은 곧바로 에이서가 '5대 질환'에 걸렸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과도한 자금 유입에 따른 '대두증(大斗症)', 불필요하게 덩치가 커진 '조직비만', 위기의식 없는 '매너리즘', 변화에 무감각한 '둔감증', 책임과 권리관계가 모호한 '철밥통 의식' 등이다.

진단이 빨랐던 만큼 처방도 신속했다. 이른바 '패스트푸드식 영업전략'. 에이서를 해외 현지시장에 맞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자는 게 핵심이다.

스 전 회장은 현지인의 생활과 식습관에 따라 조리법과 메뉴를 달리하는 맥도날드의 영업 전략을 에이서에 적용시켰다. 전 세계 34곳에 있는 생산거점을 통해 물품을 조달, 조립ㆍ판매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완제품 수출 비중을 줄였다. 현지인 고용도 확대했다. 일련의 변화 속에 에이서는 스 전 회장이 '주종(主從) 구도'라고 부르는 일종의 지주회사 체계를 갖추게 됐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1996년 에이서 개혁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글로벌 기업 우수 경영인 25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은 에이서에 두번째 위기를 몰고 왔다. 에이서만의 위기라기보다는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업계 전체의 위기였다. 이 때 역시 돋보였던 게 스 전 회장의 과감한 결단과 유연성이다.

그는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확신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에이서그룹 최초의 인터넷 자회사 '위안치(元碁)'를 설립하고 그룹을 'e-조직'으로 재편한 것이다.

당시 스 전 회장은 "최고가 될 게 아니면 집에 가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 전진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고, 최고가 아니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지론을 함축한 말이다.

그는 어렵게 구축한 '주종 구도'를 해체하는 유연성도 보여줬다. 주종구도 아래 자원이 지나치게 분산돼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일부 부문의 역량이 지속적으로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독립법인의 권한은 유지하되 지나치게 산만해진 조직을 '헤쳐 모여'하는 방식으로 재정비했다. 주종구도의 정신은 살리면서 조직의 응집력은 강화한 것이다. 

아주경제= 강소영 기자 haojiz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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