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삼성전자가 어렵게 첫 발걸음을 뗐다. 백혈병 의혹이 제기된 기흥사업장의 반도체 생산라인(5․S라인)을 사상 처음으로 국내외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라인설계 자체가 원가절감 등의 노하우이기 때문에 영업비밀의 유출우려로 외부공개 결정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어려움은 다른 차원에서 노출됐다. 당초 9시 서울 서초 사옥에서 기자들을 태우고 기흥사업장으로 출발해야 될 버스 4대중 한 대는 결국 시동을 꺼야만 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을 요구해 온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관계자와 정애정씨가 출발을 앞둔 2호차 조수석 옆에 올라와서 동행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1995년부터 2007년 초까지 11년 동안 5라인에서 근무했고 1라인 백혈병 사망근로자인 고 황민웅씨의 아내다.
2호차를 인솔하는 삼성전자 홍보팀 임원은 “오늘은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정씨는 “유족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위에 보고하고 일정을 잡으라”고 했다. 결국 40여분이 지난 후에 2호차에 탐승했던 20여명의 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택시를 타고 기흥사업장으로 이동했다.
생산라인 언론공개로 이른바 백혈병 의혹의 ‘말끔한’ 해소에 나선 삼성전자의 곤혹스러움이 어디에 있는지 보인 것이다.
이날 관심의 초점이었던 기흥사업장 5라인 내부는 쾌적했다. 왕복 200m 가량의 중앙통로를 따라 확산 공정, 포토 공정, 식각 공정, 증착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고, 폐기물함이 공정 사이에 비치돼 있었다. 400여명의 여성근로자들이 일상적인 작업하는 공간이다.
클린룸이라는 명칭처럼 라인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방진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하고 30초간의 에어샤워를 거쳐야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머리에 무스 또는 젤을 바르거나 화장을 하고 입장할 수도 없다. 클린룸 안으로 미세한 먼지 하나가 들어와 300mm 웨이퍼에 내려앉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5라인에 비해 2.5배가량 큰 S라인은 더 청결해 보였다. 자동화설비로 만들어진 S라인은 웨이퍼 이동 같은 작업을 삼성메카트로닉스에서 만든 로봇이 대신한다.
삼성전자는 1998년 IMF환란 시기를 제외하고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모든 근로자들이 줄곧 4조3교대로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근무자의 피로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안전수칙 위반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환경안전수칙을 지키는데다 생산라인도 이처럼 청결하니 사업장이 백혈병의 원인일 수 있겠냐는 호소로 들렸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인 조수인 사장은 “근로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없다”고 단정할 정도다. 이를 눈으로 확인시키기 위해 80여명의 기자들에게 이례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 내부를 공개했을 터이다.
조 사장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역학조사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삼성전자 반도체의 노하우가 유출될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라인공개를 할 필요는 없다는, 지금까지의 판단이 그랬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라인 공개를 결정하면서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그룹차원에서 강조한 ‘소통하는 홍보’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가 향후 반올림 등 의혹을 제기하는 측과 소통에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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