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융허브? 공정거래법 족쇄부터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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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9-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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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준 증권부장
 
벌써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제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론이다. 제주도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위치 자체만으로도 동북아시아 중심점인 제주도를 금융허브를 키우자는 목소리가 떠들썩했다. 

외환위기로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던 금융허브론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제주도특별자치법이 마련되면서 다시 부상했다. 이번엔 제주도뿐아니라 인천국제공항 근처 송도 청라지구, 거래소가 이전한 부산 등도 자의반 타의반 금융허브 후보지로 떠올랐다. 서울에서도 여의도, 용산, 상암 등지에 '국제금융센터'를 자처하는 초대규모 빌딩 개발계획이 쏟아졌다.

하지만 다 허사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금융허브라는 말은 가끔씩 들리긴 한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유행가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금융권 핵심인사들도 동북아 금융허브는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총재도 지난달말 뉴욕 출장길에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빠른 시일내에 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관련 서비스산업이나 교육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에 아직도 한참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금융허브로 가는 길에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인프라는 관련 법과 제도다. 금융허브가 되려면 먼저 금융사들이 마음껏 경쟁하고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를 가로막는 규제가 너무 많다. 

공정거래법만 해도 그렇다. 금융회사와 관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논의에 부쳐진 것은 벌써 2년도 넘었다. 올 2월 겨우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개정안은 여전히 본회의 문턱에 올라가지도 못한 상태다. 금산분리라는 쥬라기시절 원론에 충실한 일부 의원들 덕분이다. 

개정안은 일반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하되, 금융자회사가 3개사 이상이거나 총자산이 20조원을 넘으면 중간 금융지주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지금은 퓨전, 융·복합시대다. 아이폰혁명에서 보듯이 하드웨어산업과 소프트산업의 구별은 이젠 의미가 없다. 제조업과 금융업사이의 전통적인 벽을 절대불변 원칙으로 안고가야 할 이유도 하등 없다. 가전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는 어느새 글로벌 굴지의 금융회사로 변신해 있다.

은행이야 별론으로 하더라도 증권 보험 카드사 등을 일반지주사의 자회사로 허용했을 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SK증권이 SK그룹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일으키고, 두산캐피탈  BNG증권이 두산그룹 계열사들과 융·복합 효과를 내는 것은 되레 권장할 사안이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밀어줘야 할 일이다. 

지주회사행위제한 유예기간 동안 법인세 혜택을 받았다는 등을 빌미로 내세우며 금융자회사 허용에 테클을 걸 일은 결코 아니다. 금융사들이 재벌이나 대기업의 사금고가 될 것이 걱정된다면 적절한 룰을 만들면 된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에 골몰하고 있기에는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 나아가 금융허브라는 목표를 하루빨리 달성해야한다는 시대적 소명이 너무 막중하다. 우리 세대에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않으면, 한국 금융시장은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대만 등에 밀려 글로벌 시장은 차치하고 아시아에서조차 영원히 3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과 시장이 어디로 발전할 지는 탁월한 미래학자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숙명적으로 당파적 이익에 예속될 수 밖에 없는 정치권이 시장의 미래를 결정할려고 해서는 안된다. 정치권은 시장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다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본 룰만 잘 만들면 된다. 그것만 잘하는 것이 100점짜리 정치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몇몇 그룹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금융산업 전반의 지형 변화와 관련돼 있다.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동부 동양 등 금융계열사를 둔 그룹사들의 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금융계열사 관련 지배구조를 정비해 금융산업에 본격 투자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정치권이 족쇄만 풀어주면 동북아 금융허브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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