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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정부 시각에 동의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도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거래가 1차 거래의 당사자인 발주자와 공공계약이 원인을 제공할 여지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가 안 보인다. 국내 공공공사 거래방식의 출발은 국가계약법에 있는 원가산정방식에서 출발해 장기계속계약방식으로 종결된다. 원가산정방식은 건물이나 교량 등 완성 상품에 소요되는 콘크리트와 철근 등 재료와 설치에 소요되는 인건비 등에 대한 값을 발주자가 계획하는 공사방법에 준하여 예정 값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자동차나 혹은 가전제품의 가격을 개별 부품 값과 이를 조립하는 데 소요되는 인건비를 소비자가 계획하는 제작공법에 따라 예정가격을 미리 결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정부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원가산정방식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공공건설 서비스 구매에서는 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공공공사에서 정부가 산정한 예정가와 입찰자가 제시한 금액 간에는 많게는 40%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국내 예정가격의 반 이상이 거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국회 국감에서는 해마다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증액시켜 국고를 낭비했다는 질타가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다. 입찰단계에서 벌어진 차이가 완공단계에서는 계약액과 초기 예정가격이 거의 비슷하다고 해서 예정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주장은 거리가 있다. 정부에서는 설계변경에 대한 폐단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입찰방식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도입 목적은 설계변경을 최소화시키는 데 있고 명분은 글로벌스탠더드에 두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대안에도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취지와 달리 원도급자에 과도한 책임이 부과될 가능성 때문이다. 거래관계에서 글로벌스탠더드 개념은 수직관계가 아닌 당사자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데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은 시공계획 및 공법설계를 입찰자에게 부담시키면서도 이에 대한 보상책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입찰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은 당연히 발생하게 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기존 방식에서의 입찰가격 평가방식을 거의 준용하면서 계약 이후 발생하는 설계변경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계약자에게 부담시키려는 데 있다. 양복을 재단하는 데 소요되는 재봉틀의 종류와 대수를 발주자가 결정해놓고 원단의 단가를 평가하는 것이 과거의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재봉틀의 종류나 대수, 가봉방식이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입찰자가 몰리더라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1분 이내 등수를 매길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에서는 컴퓨터로는 평가할 수 없다. 재봉틀 대신에 수작업, 직접가봉 대신 외주로 처리하는 것도 허용되기 때문이다. 즉, 공법의 상대비교는 주관적 판단의 대상이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를 비교하는 상대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입찰자가 제시한 시공계획과 공법이 가능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발주자의 상당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수주만을 목표로 한 저가낙찰을 방지할 아무런 수단이 없어진다.
올바른 취지에도 불구하고 제도 기반 및 발주자 역량이 충분하게 갖춰지지 않을 경우 피해는 원도급자보다 하도급자, 그리고 약자인 근로자에게 그대로 전달될 위험성이 높다. 원도급에서 발생한 불공정거래의 부작용이 하도급으로 이어지리라는 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는 도입 제도기반과 발주자 역량을 충분히 갖춰놓은 후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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