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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헌규의 중국이야기 8-2> 신을 경배하는‘중국인 아닌 중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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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1-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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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중국인들의 희로애락-‘춘절(春節 설)’

순박한 미소와 보리술, 밀 죽으로 보내는 설날 아침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풍경은 짱족 마을과 농토로 이어지는 청옥빛 강과 잡석 사막, 새파란 하늘이었다. 도중에 세계 최고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강, 맑디 맑은 야루짱푸강을 지났다. 마른 풀을 뜯는 양떼들, 앞치마를 걸친 장족 여인들, 순박한 표정의 장족 노인과 아이들. 첫눈에 시짱은 매우 목가적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시원(始源)의 티베트 풍경에 푹 빠져드는 사이 어느샌가 찌근 찌근 머리가 아픈 고산반응이 찾아왔다.

춘제 전날인 그믐 날 저녁 많은 주민들이 반평도 안되는 1위안짜리 간이 샤워장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화방에서 1분 통화료가 3~4위안하는 전화를 붙잡고 먼지방의 친지들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이 곳 주민들도 녠예판(年夜飯)이라는 그믐날 저녁을 먹고 밤 12시가 넘어 정월 초하루가 되자 폭죽을 떠드리며 축제를 벌였다. 폭죽을 놓은 이들은 대부분 한족이었으며 더러 짱족들도 눈에 띄었다.

양력으로 2월 9일, 드디어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해가 밝았다. 이른 새벽 양바징(羊八井)으로 가는 길에 들른 짱족 가정의 노부부 주인은 희미한 등잔불을 켜놓고 우리를 맞았다. 전통무늬의 앞치마를 두룬 짱족 할머니는 순박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칭커(티벳트 보리)로 빚은 차와 밀죽, 짱족 특산의 말린 버터와 보리술을 내주었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봤던 한족들의 설쇠는 방식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결코 요란하지 않게, 소박하지만 정갈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순종하는 자세로 그들만의 절대자(신)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마을의 거리마다 한족과 짱족들이 어울려 폭죽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비록 민족이 달랐지만 심하게 반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만의 신을 경배하고 있어요. 한족들이 신에 대한 우리의 숭배를 방해하거나 시짱(티베트)의 전통 문화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들과 충돌해야 할 이유가 없지요. ”

설날 이른 아침 동네 어귀에서 만난 짱족 사내는 한족과 마찰이 없이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춘제도 짱족에게는 그다지 의미있는 명절이 아니라며 다만 시짱에 한족 주민들이 늘어나고 ‘한족 경제’의 위력이 커지면서 덩달아 한족 문화의 영향력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귀뜸했다.

무인지경속의 도로는 거무튀튀한 회갈색의 잡석산 계곡으로 빠졌들었다가 어느새 다시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며 양바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잡석산의 부드러운 능선들은 마치 해바라기 하듯 저마다 푸르고 푸른 진청색 하늘을 향해 가슴을 뻗치고 있었다. 잘 믿기지 않았지만 사막과 같은 이 잡석산도 여름이면 푸른 초원으로 변한다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차장 밖에서는 곳곳에 교각 토목 공사가 진행중이었는데 안내자의 소개에 따르면 이것이 2006년 중반 완공될 그 유명한 칭짱(靑藏) 철로공사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하늘길과 버스로만 가능했던 외부와의 통행에 육지운송의 대동맥인 철도교통이 더해진다는 의미였다.


<짱족들의 설날 고스톱> 티베트 수도 라싸의 짱족 주민들이 설날 아침 티베트 불교 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작을 즐기고 있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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