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정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12일엔 일체의 외부 공개일정을 잡지 않은 채 주로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3일엔 청와대에서 열린 올해 첫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인 국정운영 활동을 이어갔다. 또 낮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박물관 건립 상황과 전시물 수집 계획 등에 대해 보고받고 오찬을 함께했다.
청와대 측은 “(12일의 경우) 이미 지난주부터 일정이 없는 것으로 돼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국회 인사청문회도 받기 전에 후보자가 낙마한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데 따른 ‘충격’이 컸을 것이란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청와대도 "이 대통령이 정 전 후보자의 사퇴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주도로 정 후보자에 대한 여당발(發) ‘비토’론이 제기된 이후 “이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가운데, 자칫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대통령 발언이 공개될 경우 그 파장을 예측키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과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한 뒤에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이번 ‘인사 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된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방에 들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임 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이 대통령 호출이나 보고사항 등을 이유로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가는 경우는 많지만, 대통령이 직접 참모진의 방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에 대해 한 측근 인사는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에도 신임하는 직원들의 방을 불시에 찾곤 했다”며 “여권 안팎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임 실장을 여전히 신임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임 실장 방에 들른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 인사에 관여한 일부 참모진 사이에서 흘러나오던 “우리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얘기도 쏙 들어갔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후 김황식 국무총리와 맹형규 행정안전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을 불러 예정에 없던 구제역 긴급 대책회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긴 하루'를 마쳤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집권 후반기가 집권 초에 비해 좀 불리할 순 있지만 아직 대통령 임기가 2년이나 남은 데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 역시 여전히 높은 편이다”면서 “벌써부터 레임덕을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번 ‘정동기 사태’를 통해 한 배를 타고 있던 청와대와 당이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깨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지적하면서 “뭣보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당의 정치적 생존 욕구를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게 된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거듭 우려감을 나타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로부터 연초부터 급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서민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종합대책을 보고받고 “수립한 대책이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각 부처가 노력해 달라”고 거듭 당부하는 한편, 기름값과 부동산 시장 대책, 국제가격에 민감한 밀가루 등 곡물의 수급량 조절 문제, 입시학원비외 대학등록금 등 교육비 부담 문제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물가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26일엔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만찬 회동을 예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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