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중국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은 200여명의 기업인들을 불러 극진히 접대했다.
룽이런(榮毅仁) 당시 국제신탁투자공사 회장을 비롯한 룽씨 가문의 일가였다.
룽 회장은 덩샤오핑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제투자신탁공사라는 회사를 만든 장본인.
개혁개방을 위해 국제적 금융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덩샤오핑은 룽 회장에게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룽 회장은 해외자금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개혁개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으로 룽씨 일가가 소유한 중신타이푸(中信泰富) 룽원커지(榮文科技)는 이렇게 탄생했다.
# 2007년 10월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공산당 전국대표대회(全大)가 열렸다.
이날 공산당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에 4억3000만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싼이(三一)그룹 량원건(梁穩根) 회장 등 18명의 거대 자본가가 참석했다.
공산당의 타도대상 1호인 자본가들이 공산당원 자격으로 전대에서 표를 행사하게 된 것. 사회주의 국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덩샤오핑이 자본가인 룽 회장 일가를 인민대회당에 초청해 만찬을 베푼 것이나, 공산당 최고정치회의인 전대에서 후진타오 주석이“국제경쟁력을 가진 대기업 육성을 장려하겠다“고 한 것은 어찌보면 기이한 일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조차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실행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기업육성을 통한 ‘부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나친 행정규제 등을 없애고 있는 게 대세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이미 지난 정권부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기치로 걸고 산업경쟁력 제고를 외쳐왔지만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인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물음표를 찍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한 기업에 대한 감사원의 부가세 과세문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것은 오픈마켓인 G마켓이 할인쿠폰을 발행한 후 할인된 금액을 매출액에서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부가세를 탈루했다는 것. 감사원은 국세청에 부가세 170억원을 G마켓에 부과하고 450억원에 대한 추징 여부도 결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감사원의 부가세 징수권고에 대해 당사자인 G마켓은 물론 유통업계 대다수가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내려진 부가세 징수 대상이 이른바 ‘에누리액’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행 부가가치세법 제 13조 2항에 ‘에누리액은 과세표준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관련 법령이 있는데도 불구, 감사원이 지나친 과세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할인쿠폰은 오픈마켓과 홈쇼핑업계,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에서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발행해온 마케팅 상품이다. 할인쿠폰을 통한 에누리액은 과세 대상이 아닌데도 이 부분에 대해 ‘과세 소급적용’을 지시한 감사원에 곱지않은 시선이 적지않다. 일부에선 ”감사원이 행정력을 과도하게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높다.
이미 국내에서 지난 2001년 이동통신사가 대리점에 단말기 공급가를 할인해주고 다시 대리점이 구매자에게 약정을 걸고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한데 대해 대법원에서“할인된 이후 금액이 부가세 산정기준이 돼야하고, 할인액에 대해선 과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1998년 헌법재판소에서 부가세의 과세표준을 구성하는 공급가액을 정함에 있어 거래당사자의 약정이나 거래관행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부가세 산정기준을 할인액을 차감한 금액으로 정해 놓고 있다. 과거 유럽연방법원과 독일대법원의 판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6년 유럽연방법원은 Elida Gibbs에 대해 ‘환급해준 금액을 차감한 잔액에 대해서만 부가세 납부의무가 있다’는 판례를 남겼다. 이밖에도 독일 대법원의 유사 판례가 있다.
그동안 국세청은 오픈마켓의 판매수수료 할인을 에누리액으로 인정해왔기 때문에 유통업체는 할인액을 차감한 금액으로 부가세를 신고해왔고 이러한 기준에 따른 신고는 단 한번도 문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G마켓은 물론 유통업계 대다수가 ‘현실을 도외시한 판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만약 감사원 주장대로 ‘부가세를 탈루했다면’ 2009년 당시 국세징수기관인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기업 우대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인민대회당에서 기업인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외칠 정도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G마켓의 사례를 보면서 ‘과연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까’라는 물음표를 다시 던져보게 된다.
사람의 본성은 악(惡)이어서 그것을 방임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기때문에, 외부 가르침에 의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다.
기업을 규제하는 것도 기업의 본성을 ‘악’이라는 인식에서 근거하는 것인지 모른다. 기업의 문제만을 찾아 ‘규제’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만 한다면 누가 기업경영을 하겠는가. 기업의 본성을 악으로 보는게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선으로 보는 시각부터 가져야 할 때다. 이제라도 지나친 행정규제를 풀고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세우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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