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카다피는 22일 시위 군중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방영된 대 국민 연설에서 강경한 어조로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서 죽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시위대를 공격하라고 노골적으로 명령했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 제 2도시 벵가지에서 시위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카다피의 아들 카미스다.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그는 정예 특전부대의 지휘관이다. 다른 아들 사아디도 군 정보부대장 압불라 알세누시와 함께 벵가지에 있다.
벵가지를 비롯해 시위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것은 자신의 통치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카다피의 원초적인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1980년대 카다피는 자신의 혁명에 도전하다 해외로 망명한 “길 잃은 개들”을 죽이라며 암살단을 보냈다. 1990년대 국내의 이슬람주의 반발세력은 철퇴를 맞았으며, 1996년 악명 높은 교도소 학살사건 때에는 재소자 1000명이 사살되었다.
리비아 반체제 작가 아쇼우르 샤미스는 서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선택은 죽느냐 죽이느냐이다”라면서 “이제 그는 죽이는 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카다피는 정권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왔다. 1999년 로커비 사건(1988년 12월 21일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항공 소속 보잉 747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발해 270명이 숨진 참사사건)의 용의자들을 국제법정에 인도했으며,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계획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기도 했다. 이런 카다피가 평화적으로 정권을 내놓을 리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리비아 주재 영국대사를 지낸 리처드 달튼 경(卿)은 “카다피는 살기위해서라도 양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의 입장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생결단을 하고 덤비는 카다피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비난에 자세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리비아에서 일부 권력은 민간에 이양되어 있지만 국방, 외교, 보안 같은 핵심 분야들은 카다피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다.
무바라크와 마찬가지로 카다피도 후계자를 두고 있지 않다. 카다피는 그의 국가안보 고문이자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아들 무아타심에게서 조언을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아타심은 2년 전 카미스가 지휘하는 특전부대에 맞설 또 다른 부대를 창설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이 두 아들은 또 다른 아들인 개혁성향의 사이프 알이슬람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에서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는 “카다피 자식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권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다른 아들들은 망나니짓으로 아버지 속을 썩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아디는 행실이 나쁘기로 유명하며 마약과 술에 절어 지낸다고 한다. 한니발은 제네바에서 못된 짓을 하도 많이 한 바람에 스위스-리비아의 외교관계에 오래 나쁜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진 크레츠는 영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능숙한 이해관계 조정과 현실정치 방법을 통해 40년간 권력을 유지해 온 복잡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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