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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개인전이 열리는 아트선재센터 전시장은 군데군데 다섯명의 배우가 앉아 관객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넓은 전시장엔 군데 군데 의자 몇개, 띄엄 띄엄 다섯명의 사람들이 쇼파에 앉아 있다. 그림도, 조각도 비디오영상도,설치작품도 없다. 도대체 이게 뭘까.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오는 9일 선보이는 김홍석(46·상명대 공연영상미술학부 교수)의 '평범한 이방인'을 타이틀로 한 개인전엔 작품이 없다. 볼 것 없는 전시장이라니,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공연같은 퍼포먼스입니다. 전시장의 일반적인 풍경은 아니지만, 친구와 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적인 풍경을 재현해 놓았을 뿐입니다."
지난 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개인전은 '귀로 듣는 작품'이라고 했다. 전시장에 앉아있는 다섯명의 사람들은 배우라는 것. 작가는 "배우들은 자신이 준 대본을 바탕으로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작품'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돌로 이루어진 저의 미술 작품에 대해 설명할까 합니다."
직업배우들로 구성된 연기자들은 정해진 대본에 따라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돌,물,사람,의자, 개념에 대한 이야기다. 의자에 앉아서 듣는 관객과 말하는 배우. 낯설고 어색함이 흐르는 공간속에서 이야기와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미술을 배우가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작가의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연기자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한다. 연기자의 이야기와 행동에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작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작가는 관객과 연기자와의 만남이 자신의 작품의 종결로 선언한다. 그는 연기자와 관객과의 만남의 단계에 대한 개입을 스스로 차단하며 방관과 방임의 자세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노동력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이 과연 미술작품이라고 할수 있을까.
"제가 앞으로 할 작업들을 배우들이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이디어 텍스트를 작품화 한 것이죠. 제가 배우들에게 준 대본은 작가들이 작품 제작 이전에 갖게되는 고민들입니다. 의자를, 돌을, 물, 사람, 개념을 미술화하려는 의지, 이 다섯가지 텍스트는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순수하게 다가오는 근원적 질문들입니다. 가짜의 재현, 물질적 형태로 나타나는 다른작업들과 달리 제 작품은 비물질적 단계로서 제시되는 텍스트가 전달되는 과정이 작품입니다."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퍼포먼스지만 직접 참여해보니 '예술이 평범'해졌다. 배우의 말을 듣자 신기하게도 돌이, 사람이, 물이, 어떤 개념이 눈앞에 그려졌다.
작가의 대본을 받은 연기자들은 이야기꾼같다. 하지만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관객의 질문과 즉흥적 대화로 인해 원본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를 완전히 소외시키며 새로운 텍스트를 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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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독특한 퍼포먼스를 전시장에 선보이는 작가 김홍석이 자신의 작품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상상하며 정해진 결말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구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
"미술은 본질적으로 시각예술이지만 귀로 들었을때 더 큰 상상력을 줄 수 있습니다. 배우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객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작품이 완성되지만 이 전시는 끝이 없이 계속 이어지고 전해지는 구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친구와 친구간에 말하는 흔한 대화법을 미술관에 가져왔을뿐, 특별한건 아닙니다."
실제로 연기자들은 "대본을 외우고 자리에 앉지만 관객의 호흡에 따라 이야기의 형태가 달라진다"면서 "연극적인것과 달리 미술을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퍼포먼스가 또다른 퍼포먼스를 만들어가는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배우들에게 맡긴 상황, 보기엔 작업이 쉬워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입체화하고 그림을 그리는게 더 쉽다"면서 "상상력이 뛰어난 배우들도 텍스트를 남들에게 이야기해주는게 생각처럼 쉽지않다"면서 "그런 장면을 보고 서로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게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는게 개인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 정해진 결말도 볼수 없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 전시는 '김홍석-연기자-관람자'라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순차적 구조로 연결되어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작품 제작 현장이다.
대화로 그려내는 작품, 연극같은 이 전시는 일반적인 오브제를 통한 간접적 소통이 아닌 관객참여형 직접적인 소통을 하며 매번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다원예술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익숙함과 낯섬은 경험과 비경험의 차이라고 했던가. 이 전시는 경계와 장르를 허문 21세기 다양한 현대미술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작가 김홍석은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라운쉬바이크 미술대학과 뒈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999년 큐레이터 후한루, 김선정과의 만남을 통해 국내외 전시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제 4회, 6회 광주비엔날레, 제 50회, 51회 베니스비엔날레등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오는 14일‘작가와의 대화’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는 5월 1일까지. 관람료 성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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