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소수계 오바마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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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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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워싱턴 송지영 특파원) 지난 주말 전 세계는 영국 왕실의 '세기의 결혼식'을 미디어로 시청하며 마치 자기들의 일인듯 관심을 갖고 또 한편으로는 왕위 계승 2인자의 신부가 된 여인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미국의 학교에서도 로열 결혼식을 함께 축하하자며 어린 아이들에게 왕관을 만들어 쓰고 오라는 연락문을 학부모에게 보내기도 했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별 것을 다 시킨다고 무시하긴 했다.

아름다운 신랑·신부는 이처럼 세계의 관심과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고, 영국 왕실의 미래를 약속했다.

영국 왕실의 결혼을 보는 시각은 그러나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다. 아일랜드계 후손인 한 미국인은 왕실의 결혼식에 쏟는 미디어의 관심을 '바보 같은 짓(ridiculous)'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최근까지 영국과 좋지 않은 관계였던 아일랜드계였기 때문에 더 좋지 않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같은 백인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다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일본 왕실의 결혼식을 좋게 볼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흑인 미국 시민은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보며 "흑인들은 다 어디 갔냐"는 자조적인 질문을 했다. 앵글로색슨 백인을 대표하는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서 유색인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푸념이다. 백인들만의 행사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하는 수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동산 재벌이자 조만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등이 제기한 오바마의 출생 문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트럼프를 위시한 미국의 '버서(birther)'들은 "오바마가 케냐 아니면 인도네시아 출생이 분명하다"며 "출생 기록 원본을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처음에는 황색 미디어에서나 볼 듯한 정치 공세였지만 공화당 유권자의 상당수가 오바마의 미국 태생을 믿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오바마는 자신이 하와이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출생기록 원본을 공개하게 됐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원본이 가짜일 수도 있다"며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막장 공세이지, 결코 생산적인 논의는 아니다.

출생기록 원본을 공개한 오바마는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또 공격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 거물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이 출생기록을 공개할 때냐. 더 중요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국의 대통령이 우스운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또 한편에서는 "공개하려면 일찍 했어야 한다"고 공격했다. 결국 오바마는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했어도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정치공세에 빠져든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백악관을 되찾아오려는 공화당 후보들은 겉으로는 조금씩 다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조금씩 무너지면서 '블랙 하우스(Black House)'가 된 백악관을 되찾을 희망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와 버서들의 공격을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꼬집었다. 만일 오바마의 부친이 캐나다 국적의 백인이었다면 오바마는 이런 공격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원초적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백인 우호주의자들의 배경에는 바로 영국에서 넘어온 앵글로색슨계가 있다. 이들이 다 앵글로색슨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연의 일치로 지금 영국 왕실의 결혼식이 전 세계에 아름답게 방영되면서 두 사건이 쉽게 연결된다.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왕실을 없앤 프랑스계가 미국의 주류가 되었다면 지금 오바마가 당하는 굴욕은 덜했을 것이 분명하다.

왕실의 결혼식을 TV에서 보았을 오바마 가족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앞으로 어떤 원색적인 정치 공세가 그에게 다가갈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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