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온 부하에게 조조는 닭의 갈비를 뜻하는 계륵(鷄肋)이라고 말했다. 막료들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주부로 있던 양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이유를 묻자 양수는 닭의 갈비는 먹자니 살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라며 조조가 곧 철군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중이 무리해서 지킬 땅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계륵이 큰 이익은 없지만 포기하기는 아쉬운 것을 일컫게 된 유래다.
한 때 은행권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계륵으로 전락했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던 건설사들이 줄줄이 주저앉으면서 PF 대출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건설사를 닥달해 빌려준 돈을 회수하고 싶지만 부동산 경기 회복과 건설산업 안정을 원하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실을 떠안자니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PF 부실채권 관련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살펴보면 우리은행이 무려 2조7800억원에 달한다. 농협이 2조1500억원, 국민은행은 1조1200억원 수준이다.
다른 은행들도 수천억원의 자금을 PF 부실에 대비해 쌓아놓고 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결국 궁여책으로 내놓은 것이 배드뱅크를 통한 PF 부실채권 처리 방안이다.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참여 은행과 출자 규모 등이 얼추 모양새를 갖췄다는 전언이다. 부실 규모가 큰 우리은행과 농협 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돈을 내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그보다 적은 금액을 출자하기로 했다.
모자라는 돈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부담할 예정이다.
그러나 배드뱅크가 맡은 임무를 순조롭게 수행하게 될 지는 미지수다. 우선 은행 간의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다.
부실채권 비중이 낮은 은행들은 돈을 모아 우리은행 부실을 막아주는 셈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배드뱅크에서 아예 빠진 외국계 은행의 '얌체' 행태에 대한 불만도 높다.
일각에서는 배드뱅크를 활용하는 부실 처리 관행에 대한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배드뱅크 설립은 건설산업 전반에 걸친 사업리스크를 은행에 전가시킬 수 있으며 은행 출자를 통한 부실 처리가 고착화할 경우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PF 대출 운용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PF 리스크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배드뱅크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반성이다.
전문가들은 PF 대출 취급시 기업 신용보다 사업장의 경쟁력을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한 전문인력 확보 및 기존 인력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PF 대출은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부동산 경기 사이클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대출 운용도 경기 순환의 틀 내에서 추진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충격 흡수가 가능한 적정 PF 대출 비중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조는 물러날 때를 알고 한중을 포기함으로써 인적·물적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은행권도 이 같은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