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주요 정치인들은 몬티 총리 지명자를 상냥하고, 내성적이며, 차분한 경제 전문가로 평가하고 있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달변, 외교적 무례도 서슴지 않는 기동, 끊이지 않는 성추문 등으로 주목받은 억만장자 정치인 베를루스코니와는 성격에서 큰 대조를 보인다.
그러나 몬티 지명자가 유럽연합(EU)에서 집행위원으로 일할 때 보여준 강단있는 모습은 내성적인 성격과 대조적이다.
그는 1999년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에 임명된 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주도하면서 미국 정부와 대기업의 압력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EU 및 경제계 지도자들은 이런 몬티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기고한 칼럼에서 몬티 지명자를 “냉정한 전문가가 아니라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이라며 “사적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공직을 수행해낼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극히 유능한(extremely competent) 인물”, 이탈리아 최대 사용자단체인 이탈리아산업총연합의 엠마 마르체갈리아 회장은 현 시점에서 ”올바른 인물“이라고 각각 평했다.
이탈리아 언론은 그의 전문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게 붙여줬던 `슈퍼마리오‘라는 별명을 이제 마리오 몬티에게 사용하고 있다.
사생활과 성장 과정에서도 몬티와 베를루스코니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몬티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와 40년 동안 지고지순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슬하에 두 아이를 뒀다. 취미가 이집트 고대 문명 연구일 정도로 학구적이다.
10대 속옷모델과의 성추문으로 부인으로부터 이혼 선언을 당하고, 현재 미성년 성매매 재판에 걸려있는 베를루스코니와는 사뭇 다르다.
1943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바레세에서 태어난 몬티 지명자는 밀라노 보코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밑에서 배웠다.
외환거래에 금융거래세(토빈세)를 부과한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해낸 토빈 교수의 제자답게 몬티 역시 독점 환경에서 은행들의 운영 방식을 연구한 클라인-몬티 모델을 고안해내 학계에도 족적을 남겼다.
몬티 지명자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에는 경제학 공부에만 전념했고, 자전거 타기와 국제뉴스 청취가 취미였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베를루스코니는 일찌감치 건설업에 뛰어들어 아파트 건설과 분양으로 큰 돈을 모았다. 이후 언론재벌로 변신한 뒤 1994년 재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총리 자리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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