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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재정위기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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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1-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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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KDI원장)
 
 그리스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조가 진행되고 있으나 디폴트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등 여타 남유럽 국가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유럽의 문제는 재정위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당초 위기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서 시작되었다. 유로 통합을 앞두고 금융시장은 낙관론에 빠져들었다. 유로 통합이 이루어지면 유로권의 모든 나라가 독일만큼 튼튼한 경제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가 형성되면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국가로 자본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7년 GDP의 14%, 2008년 15%에 달하기도 하였다.
 
 자본유입이 이루어지면서 이들 국가의 금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예를 들어 1997년에 그리스의 장기금리는 독일보다 5.5%포인트 높았으나 2001년에는 차이가 없어졌다. 사실 같은 통화를 쓴다고 하여 모든 나라의 정부가 금융시장에서 동일한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미국 기업들은 모두 달러화를 쓰지만 신용등급은 천차만별이고 이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 역시 천차만별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로 통합 과정에서 목격된 금리의 수렴은 매우 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남유럽 국가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자본으로 소비와 투자를 늘렸다. 생산능력의 뒷받침 없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불안해졌다. 그리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3~4%의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였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임금도 오르고 수출경쟁력은 떨어졌다. 제조업부문의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은 그리스에서 1995년부터 2010년의 15년 동안 89% 상승하였다. 반면 같은 기간 중에 독일에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민간부문뿐 아니라 정부부문 역시 재정적자를 늘리고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2007년 GDP의 7%, 2008년 10%에 달하였다. 이러한 재정적자는 정부부채의 누적으로 이어졌다. 그리스의 정부부채는 2000년에 이미 GDP의 100%를 넘어섰다.
 
 2008년 말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유럽은 다소 느긋하게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돈벌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비해 사회적 형평을 중요시하는 유럽의 경제시스템은 훨씬 안전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전염되면서 유럽의 금융기관들도 부도위험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해진 금융시장은 경제구조가 취약한 남유럽 국가에 대해 먼저 돈줄을 줄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말에 경험한 외환위기도 우리 경제 내부의 문제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과 겹쳐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즉, 개발연대 중에 기업 및 금융부문의 부실이 누적된 데다 1990년대 중에 자본자유화와 더불어 외화차입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면서 해외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 중에 동아시아 국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에 전염되면서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우리나라와 남유럽의 위기가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민간부문이든 정부부문이든 남의 돈에 의존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언제까지나 경상수지 적자로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지탱할 수는 없으며, 언제까지나 재정적자로 정부지출을 지탱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쟁이들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코앞에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나 남유럽 국가들과 같은 변방의 국가는 그런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의 부채해소(de-leveraging)가 완료되기까지는 앞으로 최소한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해 공연히 경기부양에 나섰다가 또 다른 부실의 싹을 키우기보다는, 거시경제의 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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