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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삼국지기행 22 안후이성편> 6-1 주유의 재발견, 짧지만 강렬했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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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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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경록 기자) '삼국지'와 같이 스토리가 있는 여행은 21세기 새로운 여행드렌드이다. 이야기가 풍부한 곳은 관광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이집트의 '피라미드',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그러했다. 중국 대륙은 스토리로 가득한 나라다. 그 중 널리 알려진 '삼국지'는 동서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스토리 중 하나다. 유비, 조조, 손권 등 과거 영웅들이 활약했던 역사적 사실과 남겨진 유적들은 관광자원으로 엄청난 자산이다.

이틀 간 우리 취재진은 조조를 만나보았다. 이번 여정에서 우리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과 또 다른 모습의 조조를 발견한 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다만 이야기거리가 풍부했던데 비해 1800년전의 흔적들이 많이 자취를 감춘 때문인지 기대보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우리 '걸어서 삼국지 기행' 취재팀의 일정은 '오(吳)'의 위대한 장수, 주유를 만나러 가는 길로 이어졌다. 서른 여섯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삼국지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재진은 보저우에서 차를 타고 안후이성의 중부 차오후 시로 향했다. 거리는 안개가 자욱했다. 오후 4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이미 해는 모습을 감추었다. 공업화의 물결은 거세게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었다. 곳곳에 대형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넓은 도로가 한창 공사 중이었다. '1800여년전 이 대륙을 차지하고자 했던 수많은 영웅들은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라며 지루한 이동시간을 혼자만의 즐거운 공상에 빠져본다.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안후이성의 차오후(巢湖)시. 안후이성 중부에 위치하고 남으로는 창장(長江), 북으로는 중국의 5대 담수호인 차오후 호수와 접해있다. 지명은 차오후 호수에서 유래했다. 전체적으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이다. 구릉과 평야지대가 주를 이루며 광대한 호수가 있어 안후이성에서 가장 비옥한 곳으로 꼽힌다.특히 차오후 호수의 과거 명칭은 자오후호(焦湖)였는데, 모양이 새집 같다하여 새집을 의미하는 차오(巢)로 이름을 바꿨다. 호수에는 무산섬이 있는데 풍광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숙소는 차오후시의 탕츠온천이라는 곳이었다. 한창 도로가 확장 중이라 네비게이션 조차 길을 잃을 정도였다. 물어물어 겨우 숙소에 도착하자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는 "안휘성 허페이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라며 유명 온천이 있으니 우리 보고 이곳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라고 귀뜸했다.

밤이 깊어갈 수록 주유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삼국지를 읽은이라면 오나라의 장수 주유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를 제갈량과 간접 비교해 그를 폄하했지만 정사 '삼국지'는 주유가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맞아 당당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승리로 이끌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더욱이 적장인 조조가 얼마나 자기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이던가.

다음날 아침 취재진은 이른 아침을 먹고 짙게 깔린 안개 속을 헤치며 주유의 묘가 있는 루장현으로 향했다.

"탕츠온천은 국제 온천 휴양지로 만들기 위해 차오후시에서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온천, 산수, 종교, 자원이 풍부해 안후이성 풍경 명성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원이 친절하게 탕츠온천에 대해 설명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온천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던 리조트와 온천 시설들이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이곳이 유명 온천지역임이 실감났다.

루장현 주유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취재차량이 1시간 반여만에 도착한 곳은 차오후시의 4개 현 중 루장현이라는 곳이었다. 루장현은 주유의 고향이자 주유의 묘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토대로 루장현에서는 많은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류장현의 주유묘에 대한 역사검증이 끝나 여기 있는 묘가 진짜 주유묘라고 인정을 받았다. 이에 시는 대대적인 재건축을 하며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제 1회 주유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도 계획 중이지만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관계자는 답했다.

주유묘 입구를 들어서면 주유를 찬양하는 시가 새겨진 벽이 나온다.


“후난(湖南)성의 웨양(岳阳), 장시(江西)성 신간(新淦), 안후이(安徽)성 쑤쑹(宿松)에 주유묘가 있다는 설이 있지만 주요묘는 루장현에 있는 것이 진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탕츠의 관광객수는 지난해 50만명에 달했다. 올해는 19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여유국 직원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래 관광객 유입은 적었다. 비중은 2.3만명 정도다. 하지만 온천과 함께 류장현을 중심으로 삼국지 유적을 대대적으로 알려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주유 기념관 전경.


'ㄷ'자형 복도 안쪽에 자리잡은 주유 무덤의 모습.


“나 그대를 얻었으니, 대업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오”

‘삼국지’ 오서 ‘주유전’에 따르면 손책은 주유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손책과 주유는 친구이자 군신의 관계였다. 또 동서지간이기도 했다. 이후 손책이 죽고 손권이 계승하자 주유는 장소, 정보 등 문무관과 함께 손권을 충심으로 보살폈다. 특히 조조가 화북을 평정하고 강릉에 진격해오자 강화론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적벽에서 노숙과 함께 위군을 대파하고 촉의 유비를 경계해 사천 지방에 대한 공략을 계획하였으나 이를 실행하기 전 젊은 나이에 병사했던 비운의 영웅이다.

'ㄷ'자형 회랑에는 주유의 일화를 새긴 그림과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


주유묘를 답사하고 나오는 길에 사당앞에 작은 우물이 있었다. 루장현의 관계자는 이 우물이 바로 각각 손책과 주유의 부인으로 자매지간인 대교와 소교가 사용한 우물이라고 했다. 후에 이들을 이교라고 불렀다. 안내원은 이곳에서 이교가 우물에 비친 모습을 보며 화장을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우물고사가 사실인지 여부는 밝혀낼 도리가 없다. 주유의 고향이 이곳이고 그의 묘가 여기에 있으니 이교가 사용했던 우물이 이것이지 않겠냐는 추정일뿐.

주유와 손책의 부인이 된 대교와 소교의 모습.


이들의 이야기는 삼국지 역사 중 가장 아름답고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다. 삼국지 주유전에 따르면 "손책과 주유가 25세(추정)의 나이에 환성(지금의 안휘성 잠산현 북쪽)을 점령했을 때 교공(橋公)의 두 딸을 얻었는데. 모두 절색이었다. 손책은 스스로 대교를 취하고 주유는 소교를 택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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