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거주하며 외교 관련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한 관계자는 9일 오후(현지시각) 기자를 만나 “토요일이었던 12월17일 오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갑자기 당내 비상연락망을 통해 전화를 받았다”며 “상급자로부터 차오셴링다오(朝鮮領導,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사망했으니 몇 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갈 생각하고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 지금 당장 ‘집결지’로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철저히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중국공산당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으며, 북한관련 정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직위에 있었다.
그는 이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가족들에게 일주일 가량 집에 못 들어올 것 같고, 업무특성상 전화통화도 잘 못할 것 같다고 말해두고는 옷가지를 챙겨 바삐 집을 나왔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중국이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어떤 경로로 알게 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우리는 김정일 사망 소식에 대한 진위파악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자국 정보기관의 첩보나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의 첩보는 통상 여러 차례의 추가적인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별다른 확인절차가 필요치 않았다는 것. “북한으로부터 직접 통보를 받은 것인가”라고 재차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이 사망당일 중국에게 직접 통보했다는 것이며 북한이 김정일 사망 후 내부수습을 통해 상황을 정리한 이후 18일 오후 혹은 19일 오전에나 중국에 통보했을 것이라는 기존의 관측을 뒤짚은 셈이다.
17일 오후부터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한사코 입을 다물던 그는 “당시 상황은 무척 급박하고 긴박했으며 사무실은 한순간 한순간이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며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 대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상황”이었다고만 간략히 설명했다. 중국은 김정일 사망으로 인한 북한 체제 불안과 붕괴가능성 그리고 그로 인한 한반도 전쟁가능성을 비롯해 미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반응 등을 예측하며 면밀히 준비작업을 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외교, 공안, 정보, 군사, 상무, 재정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등 외교적인 문제를 비롯해 향후 발생 가능한 대량 탈북자 문제, 유사시를 위한 중국 병력 이동 문제, 대북 경제지원 문제 등도 함께 논의됐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조장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외사영도소조가 소집됐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대책마련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사망발표 이틀전에 이뤄진 사전통보에 힘입어 중국은 사망 발표 이후 신속하면서도 전략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다. 19일 정오 북한이 김정일 사망사실을 공표한 이후 그날 저녁 중국은 신속히 북에 보내는 공식조전을 공개했다. 조전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무원 등 4대 핵심 권력기구 명의로 작성됐으며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라는 문구를 포함시켜 김정은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김정은을 지지할지에 대한 여부나, 김정은 지지를 언제 공식화할 지에 대한 중국 내부의 입장정리가 19일 이미 완료됐던 것이다.
그리고 20일과 21일 이틀동안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모두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을 마쳤다. 또한 외신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공안당국이 17일 밤 특수부대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비상대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고, 선양(瀋陽)군구의 부대들이 병력이동을 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베이징 외교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고 19일 아침 생일상을 받는 등 평온한 모습을 보였던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17일부터 숨가쁘게 움직여왔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대북 정보력은 물론 대중 정보력에도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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