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중국의 '심장' 베이징을 배경으로 하고, 고성장과 양극화가 초래하는 도시주민들의 삶과 매춘∙도박 등 부조리한 사회 상황을 묘사한 핑궈는 중국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급기야 상영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자본주의의가 낳은 폐단을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는 국제 영화계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베드 신을 소화하며 힘없는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대변한 히로인 판빙빙(范冰冰)은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여신’의 탄생
올해 32세의 판빙빙은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 출신으로,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와 해군 항공병 문공단 가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특히 옌타이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대중가수였는데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입상한 바 있다.
예능계에 종사하던 부모로부터 ‘끼’를 물려받은 판빙빙은 1996년 상하이(上海) 셰진헝퉁(謝晉恒通) 예술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TV 드라마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던 판빙빙은 1997년 ‘황제의 딸(원제 還珠格格)’에 출연, 주인공 자미의 몸종인 금쇄로 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황제의 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몰이를 한 이후 판빙빙의 잠재력을 발견한 연예기획사 페이텅(飛騰)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왕징화(王京花) 프로덕션과 계약을 체결했다가 곧이어 왕징화 종합 연예기획사인 화이브라더스(華誼兄弟)로 자리를 옮겼다.
판빙빙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바쁘게 오가는 동시에 여러 장의 앨범을 내며 가수로서도 맹활약했다. 2007년 6월, 그녀는 연예기획사 ‘판빙빙프로덕션(范冰冰工作室)’ 문을 열며 연예 사업에 발을 디뎠다. 중견배우 왕쉐치(王學圻)와 대만 소녀들의 우상 황샤오치(黃少祺), 신예스타 한샤오(韓曉) 등이 그녀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지난 해에는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국판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에 출연, 중국인 저격수로 열연하며 한국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이슈메이커
'중국 대표미녀'·'바오바오(寶寶, 딸이나 여자친구를 부르는 애칭)'…'판예(范爺, 爺는 존칭)', 모두 판빙빙을 일컫는 말이다. 판빙빙은 유명세만큼이나 무성한 소문을 낳으며 중화권 연에계의 중심에 서 있다.
성형설, 스캔들 등이 여자 연예인으로서 겪는 통과의례라면 판빙빙은 데뷔 초부터 남자배우들과의 무수한 염문설에 시달렸다.
가장 최근에는 중국 모 부동산 재벌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또 선배 배우인 왕쉐치와의 결혼설도 불거졌다. 심지어 18세 아래 남동생이 사실은 판빙빙과 그녀의 연예계 대부인 훙진바오(洪金寶) 사이의 아들이라는 설까지 판빙빙은 유명세에 따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2010년 작 '관음산'으로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예우 차원에서 동 영화제의 심사위원이 된 뒤로는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다. 중국 온라인 상에는 "일본인 남자와 열애중이다", "일본인과 결혼하려고 안달이다"는 등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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