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 기행 29 후베이성편> 6-1. 복수에 눈먼 유비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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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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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관우를 잃고 손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유비. 그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오나라로 향했다. 창장(長江)을 따라 나 있는 절벽 벼랑길에 늘어선 촉의 군대행렬이 무려 700리에 걸쳐 이어졌을 정도로 엄청난 대군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로지 손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유비는 결국 손권에게 대패하고 패잔병을 데리고 백제성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아우를 잃은 슬픔과 자책, 그리고 허탈감으로 몸 져 자리에 누운 유비는 마침내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효정전투 유적지 입구.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유적지 입구가 취재진을 쓸쓸이 반긴다.


취재진이 징저우(荊州)에서 차로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유비가 손권에게 대패한 그곳, 이창(宜昌) 효정(猇亭)전투 유적지다. 이창의 옛 지명은 이릉(夷陵), 그래서 이릉전투라고도 불린다.

아침까지만 해도 썩 괜찮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였다. 마치 하늘도 유비의 패배를 슬퍼하는 듯이 짙은 먹구름 아래 굵은 빗줄기가 퍼붓는다. 도로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효정전투 유적지 입구가 쏟아지는 빗 속에서 홀로 쓸쓸히 취재진을 반긴다.

입구 왼편에 세워져있는 제갈량의 출사표 비석.


입구에 들어서니 왼편에 높이 1.5m 길이 20m에 걸쳐 기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유명한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다. ‘전(前)출사표’ ‘후(後)출사표’ 두 편으로 돼 있다.

유비는 죽기 전 제갈량에게 촉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전한다. 제갈량은 천하통일의 대업이 이제 자신의 어깨에 걸려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북벌을 결심한다. 그리고 유비의 아들인 촉제(蜀帝)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두 번에 걸쳐 올리고 30만 대병을 일으켜 위(魏)나라 정벌에 나섰지만 결국 사마의(司馬懿)에 패하고 말았다.

제갈량의 충성과 신의, 그리고 원대한 포부가 담긴 출사표는 후대에 와서 ‘불후의 명문’으로 불린다.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남자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출사표 비석을 뒤로 하고 취재진은 쏟아지는 빗 속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삼국지 3대 유명 전투 유적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관광객의 발길이 뜸하다.

안내원은 “지난 1992년 처음 개방됐을 때는 하루에 약 2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고 말한뒤“그러나 지금은 유적지를 개발한지가 너무 오래돼 찾아오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보였다.

효정전투 유적지 곳곳에는 다만 20년 전 관광지가 성행했던 당시 운영되던 매점, 기념품 판매소 등이 지금 당장이라도 쓸어질 듯 폐가로 남아있었다.

전시용 전차. 실제 전장에서 쓰였던 전차는 불에 타 없어지고 다만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전차 두 대가 덩그러니 서 있다.


세마리용. 효전고전장에 있는 황색 홍색 청색 용 세마리. 각각 유비, 관우, 장비를 상징해 삼형제의 의리를 상징하다. 또한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위. 촉.오 삼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와천(蛙泉 개구리 샘물). 효정전투 당시 유비의 병사들은 먹을 물이 없어 창장의 물을 그대로 먹어 배탈이 나곤 했다. 식수 문제로 고민하던 유비가 매번 낮잠만 자면 꿈에서 청개구리가 나타나 울었다는 것. 잠에서 깬 유비가 꿈에서 청개구리가 울던 곳을 파보니 맑은 샘물이 솟으면서 유비의 군사가 물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가파른 계단 위를 오르니 흰색 탑이 하나 외로이 서 있다. 고령백탑(古靈白塔)이다.

산 위에 홀로 서 있는 고령백탑. 전투 도중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탑이다.


안내원은 “이창은 지난 수 천년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난 격전지”라며 “2000년간 총 8차례 역사 속 대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으며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탑”이라고 설명했다.

221년 유비가 이끄는 촉군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비교적 시원한 숲으로 진영을 옮겼다. 그리고 손권의 장수 육손은 대대적인 화공으로 촉군을 공격했고 수많은 병사들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취재팀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안돼 깎아지를 듯한 암벽을 도려내 만든 잔도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총 1.5km에 걸쳐 이어진 잔도가 절벽의 허리를 에워싸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창장이 넘실넘실 흐르고 있다.

아찔한 절벽을 깍아 만든 잔도. 절벽 아래로는 창장이 흐르고 있다.


아찔한 절벽 사이 바위를 깎아 만든 잔도를 따라 걷는다. 빗길이라 그런지 너무 미끄럽다. 자짓 잘못하면 발 밑 20~30m 아래 창강으로 떨어질 듯하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너비가 1m 남짓한 아슬아슬한 벼랑길 위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그 옛날 1800여년 전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곳을 걷던 유비의 모습을 떠올린다.

잔도를 걷다 보니 절벽 사이로 웬 통로가 약 10m 가량 나 있다. 안내원은 우리가 호랑이 이빨위를 걷고 있다고 한다. 이 절벽산은 후야산(虎牙山)이라 불리는데 절벽 중턱에 바로 호랑이 이빨같이 생긴 기다란 틈이 자연적으로 형성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 절벽사이로 난 통로. 호랑이 이빨처럼 생겨 이 산은 호야(虎牙)산이라 불린다.




'호랑이 이빨'을 지나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니 왼쪽에 웬 동굴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동굴 안에 들어서니 안에는 다름아닌 유비의 석상이 홀로 덩그러니 서 있다. 당시 오나라 군사의 추격을 피해 유비가 이 곳에서 얼마 간 몸을 피해있던 은신처라고 한다. 동굴 앞에는 ‘장룡(藏龍)’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용이 숨어있던 곳이라는 뜻이다. 용은 곧 유비를 가리킨다.

효정전투 당시 오나라 군사를 피해 유비가 은신해있던 동굴.


동굴에서 몇 걸음 더 가면 바위가 하나 나오는데 안내원이 취재진에게 “삼국지 인물 중 누구를 닮았냐”고 물어본다.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몰라서 물어보니 관우상이란다. 얼핏 보니 길고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미염공’ 관우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는 당시 병사들을 숨겨 놓았다는 장병동(藏兵洞)도 있다. 다 무너져서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니 이들의 허술한 관리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과거 군사를 숨겨놓은 장병동.


효정전투 유적지를 나오는 길목에는 3층짜리 건물로 된 관우 사당도 볼 수 있다.

효정고전장 출구에 위치한 관우사당.


사당 안에는 관우상이 놓여있다. 오른 손에 춘추를 들고 왼손으로는 긴 수염을 매만지며 매서운 눈빛으로 책을 읽는 모습에서 문무를 겸비한 장수의 풍모가 흘러 넘친다.

관우사당 안에 모셔놓은 관우상. 춘추를 읽고 있는 관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훌륭한 장수이자 믿었던 아우를 잃은 유비가 느꼈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유비의 섣부른 복수심은 전투의 패배로 이어졌고, 이로써 촉의 국운은 쇠하고 말았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데 마치 촉나라 비운의 역사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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