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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탁 회장 별세 “아직도 국산물감 깔보는 풍조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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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2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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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파색채’ 50년 물감 하나에만 쏟아 부은 장인정신 후대가 이어받아

(사진위쪽 좌)알파색채 남국요숙 대표, (사진위쪽 우) 알파색채 전영탁 회장, 남궁요숙 대표 부부, (사진아래) 알파색채 물감으로 재도색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아주경제 이상준 기자)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린 88서울올림픽. 행사의 상징성을 알리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그러나 명예로운 국가적 행사에 그것도 상징을 나타내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 당시 최고급이라 여기던 일본 물감으로 채색한 지 불과 4년 만에 박락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작가는 주어진 대로가 아닌 ‘알파 아크릴 칼라’로 다시 칠했다. 눈 비 바람 17년이 넘은 지금도 금방 칠한 듯 색깔이 선명하다.

한국 미술재료의 역사를 써온 ‘알파색채’ 창사 50년을 맞아 창립자인 전영탁(93) 회장이 지난 10일 오전 10시 12분 별세했다.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주오(中央)대를 졸업하고 1962년 알파색채를 창업해 50년간 물감 제조에 힘을 쏟았다.

지난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파 포스터 칼라’ 그림 물감을 기억할 것이다.

투박한 튜브에 담겨있던 당시 다른 제품과는 달리 ‘알파 포스터 칼라’는 예쁜 유리병에 담겨있어 고급스러우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줬다. 물론 색과 재질도 뛰어나 ‘알파 포스터 칼라’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언제나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일본 물감들이 우리 미술계를 휩쓸고 있던 1965년 ‘알파 포스터 칼라’를 자체 개발해 대히트를 시킨 이가 바로 고인이 되신 전영탁 회장이다.

▲ ‘세계의 명화(名畵)’를 우리 기술로

알파색채는 특이하게도 남편이 창업하고 부인이 공동경영에 참여한 사례다. 전영탁 회장이 알파색채를 설립한 후 부인 남궁요숙 사장(84세)이 경영에 참여, 영업과 품질관리를 담당하며 지금까지 부부가 함께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재미로 시작한 게 사명감이 됐어요. 손 가는 게 어찌 많은지 돈 벌자고는 못합니다.”

고인에게 교사였던 아내가 어느 날 전해준 말이 씨가 됐다.

“학생들이 쓰는 물감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 희게 칠한 게 시간이 지나면 핑크색으로 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 좋은 게 있기는 했지만 비싼 일본제. 전 회장은 일본의 ‘구사카베 유화회구’를 찾아갔다. 일본 주오대 출신인 그는 그곳 사장이 대학 후배임을 빌미로 재료와 배합에 관한 기초기술을 전수 받았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며 50년간 계속된 전 회장 부부의 ‘색채 사랑’은 장인정신의 진수를 보여준다. 알파색채는 1969년 국내 최초로 전문가용 포스터칼라인 ‘알파 700’을 출시했다. 숫자 ‘700’의 의미는 700번의 실험 끝에 탄생한 제품이라는 뜻이다.

1962년 창업 이래 알파색채가 만든 물감은 모두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다. 전문가용 수채화물감(1975년), 포스터 칼라(1976년), 동양화 접사채색(1977년), 아크릴칼라(1981년), 마커 펜(1985년), 전문가용 동양화채색(2001년), 아크릴 과슈(2003년), 수채화 과슈(2004년), 전문가용 파스텔(2005년) 등이 대표적이다.

알파색채 제품은 변퇴색 시험기를 통해 약 45년 뒤의 변색 정도를 측정한 결과 세계 명품들보다 훨씬 변색이 적었고 보존성도 뛰어났다.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은 ‘대한민국이 예술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알파가 힘이 되겠다’는 창업정신을 노 부부가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남국요숙 사장은 “알파색채는 결코 큰 기업으로 성장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뜻이 없다”며 “단지 전 세계적인 명화들이 알파가 만든 물감으로 그려져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위상이 높아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가업을 승계해 나가면서 자식 중 막내딸인 전선영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지금껏 미술계에서 쌓아오신 평판이 가장 큰 재산이에요. 알파색채는 얄팍한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고 만든 회사가 아니예요. 명문 장수기업을 꿈꾸는 당당한 문화기업이죠. 평판과 올곧은 창업정신, 이 두 가지가 알파의 가장 큰 경쟁력이죠.”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전문성과 뚜렷한 목표의식도 없는 기업가 2세들에게 단순히 부의 대물림 만을 위해 기업이 승계되는 경우도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 하지만 더 좋은 색을 향한 변하지 않는 열정과 도전으로 똘똘 뭉친 알파색채의 가업 승계는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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