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중진 용퇴론이 나올 때 마다 전면에 나서 불을 끄고 제방 역할을 한 홍 의원. 이 때문의 그의 갑작스런 행보에 의문을 나오고 있고 포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 의원은 향후 거취를 당에 일임했지만 여권에서는 “그는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다른 중진들이 대거 탈락해도 홍 의원 자신이 살 길은 마련했을 것”(영남권 친박 중진)이라는 말이다.
1981년 11대 국회에서 관제야당이던 민한당 소속으로 국회에 들어온 홍 의원은 6선까지 하면서 군부정권, 3김시대의 파동속에 단 한차례도 순탄하게 금배지를 단 적이 없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전년 대선에서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분열하자 이들과 결별하고 무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 뛰어들어 낙선했다. 14대 대선을 앞두고는 3당합당을 비판하면서 민주당에 입당, 김대중 대선캠프 대변인을 거쳐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됐다. 4년 뒤에는 정계복귀한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남아 같은 지역 2연패를 달성했다.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소속으로 나섰다가 한명숙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홍 의원은 이듬해 경기도 광주시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공천에서 밀리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선거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이명박 후보 측에 의해 복당이 거부돼 무소속으로 진두지휘했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선 ‘친박연대’ 소속으로 한나라당의 텃밭 대구 서구에서 ‘박근혜-강재섭’ 대리전을 펼치며 승리했다.
이같이 중요 국면마다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했던 홍 의원은 공천 탈락보다는 수도권으로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 강남벨트, 분당 등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열세인 수도권 표밭을 공략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우세하다.
여권 관계자는 “집권당에서도 7선의 국회의장 후보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구보단 수도권이 정치인 홍사덕에게는 어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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