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조용성 특파원) “한중수교는 좌절 위기에 빠진 중국의 개혁개방을 되살리는 역사적 계기였습니다.”
22년째 중국 현지 언론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베이징 유일의 교민신문 베이징저널의 신영수 발행인은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개혁개방의 불길을 재점화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면 같은해 이루어진 한중수교는 실제로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22년동안 현지에서 중국을 관찰해온 노련한 언론인답게 그는 중국의 경제발전과 G2로의 굴기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1978년 이후 착실하게 추진되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노선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를 계기로 위기를 맞게 된다. 중국 내에서 개혁개방에 대한 회의와 함께 사회주의로의 회귀 여론도 일었다.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의 톈안먼사태로 드러난 열악한 중국의 인권문제를 내세워 경제제재를 가했고 각국의 투자가 일시 중단됐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로 투자를 꺼리는 대신 상품 판매에 주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덩샤오핑은 1992년 초 남순강화를 통해 변함없는 개혁개방 추진을 내외에 다짐했다. 그리고 나서 그해 8월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실현됐다.
신 발행인은 “당시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의 극심한 노사갈등과 임금 인상으로 많은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생산기지를 필요로 했다”면서 “그런 차에 중국의 빗장이 열리자 우리 기업들은 물밀듯이 대륙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자본의 대중투자가 무서운 기세로 확대되자, 일본 업계에 “이러다 한국이 중국시장을 점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다. 일본 자본은 다시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자본이 앞다퉈 중국시장으로 진출하자 미국 역시 투자를 재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 분업화 추세와 맞물린 글로벌 대중 투자 붐이 일면서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끌어 올리는 결과가 됐다.
신 발행인은 “결국 위기를 맞았던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거스를 수 없는 확고한 대세로 굳어지는 데는 한중수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30여년 동안에 이룩한 중국의 경제성장은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하며 그 요인을 크게 세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중국의 경제적 굴기의 원인을 한족의 강인성에 뒀다. 신 발행인은 “대륙적인 기질을 타고난 한족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고난의 세월을 겪기도 했지만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두번째 요인으로는 덩샤오핑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존재와 그의 개혁개방정책을 꼽았다. 덩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했으며 개혁개방을 불굴의 신념으로 추진했다.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화대혁명의 아픈 역사를 세번째 요인으로 언급했다. 다시는 되풀이해서 안될 문혁의 뼈저린 교훈이 있었기에 중국사회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노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개혁개방 과정에서 지도부 내의 갈등이 빚어질 때도 원만한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
신 발행인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지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앞으로 몇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외국에 나가있는 자국의 제조업 기반을 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정책을 표방한 데 이어 세계 선진 각국이 이같은 정책을 채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내의 많은 외국 제조업체들이 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실제 보스턴 컨설팅그룹은 5년 내에 중국 진출 외국 제조업체들의 15%가 본국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로 인한 실업 증대와 사회적 불안도 중국이 대비해야 할 과제다. 또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문제도 중국의 사회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양극화로 인한 사회혼란은 인권 및 소수민족 문제와 함께 서방매체에서 자주 제기하는 ‘중국위기론’과 ‘중국분열론’의 근거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신 발행인은 “서방 언론의 주장의 이면에는 굴기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깔려있다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라며 “이같은 중국의 판단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서방 국가들도 중국이 이처럼 단기간에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중국의 경제적 굴기는 기존의 세계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며, 이는 서방세계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굴기가 서방의 전통적인 ‘황화론(黃禍論, yellow peril)’의 악몽을 되살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제기했다.
신 발행인은 한중관계의 발전의 토대에는 서로에 대한 두터운 이해가 선행되야 한다고 봤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의 시각이 아닌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중국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야 한다는 것. 자신을 너무 앞세운 채 감정적인 대응을 보이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익차원의 실리적인 접근을 지향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발행인은 “중국은 우리나라가 숙명적으로 함께 공동 발전해야 할 파트너 국가”라며 “중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륜 있는 중국 전문가가 더욱 많이 배출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우리나라의 국익과 관련지어서 중국과 중국인을 어떻게 봐야하고 어떻게 교류해야 하며 어떻게 더불어 살아나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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