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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 서도호가 리움미술관 입구에 걸린 투영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리움제공.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그는 간(間)에 빠져 있다. 사이에 있는 남자, 시간을 잡고, 공간을 짓는다.
서울과 뉴욕 런던에 거주하며 유목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설치미술가 서도호(51)씨다. 그는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집단이라는 나와 나와 다른 것과의 관계, 경계에 대해 늘 고민이다.
여러곳에서 살다보니 공간에 관심이 생겼다. 뉴욕으로 유학하면서 '공간'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언어' 도 문제였다.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물질로 다가왔다. 서울에서 살때는 공간과 언어는 투명한 존재였는데 미국에서는 불투명한 존재로 다가왔다.
"뭔가가 어색한 걸 해결하려고 집안 공간을 줄자로 재기 시작했어요. 어색한 것을 구체화시키려고 했죠. inch에서 cm로 계산하기도 힘들었어요."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살던 그가 뉴욕아파트에 살면서 느낀 '어색함', 양옥과 한옥의 충돌 경험은 '장소특정적 작품'을 시작하는 배경이 됐다.
거실, 방,주방 크기를 재면서 서양건축의 디테일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된 것도 한몫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뉴욕으로 이동하면서 꾸준히 '집'을 탐구했다. 그렇게 시작한 '집'시리즈는 '서도호'를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이 됐다.
성북동 한옥과, 뉴욕, 베를린 집등은 작가의 작업 모티브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해외에서 유명한 그의 집 시리즈를 한자리에서 만나볼수 있는 전시가 서울 이태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22일부터 열린다.
그의 경력에 날개를 달게 해준 '집'시리즈를 중심으로 40여점의 조각, '집 시리즈'가 탄생하는 과정을 볼수 있는 영상, 상상력과 불가능에 도전하는 그의 독특한 드로잉도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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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짓은 서도호 '집속의 집' 전시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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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의 천으로 만든 집. |
건물을 그대로 본뜬 것처럼 사실적이다. 옥색, 푸른색의 천으로 만든 집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섬세하게 손바느질로 '지은 집'이다. (물론 스탭 10여명과 함께하는 작업이다.)
그가 천으로 만든 집은 그의 개념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재료다.
벽이면서도 벽너머의 공간이 보이고, 방 안에서 방 바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경험한 공간은 안과밖의 구분이 모호하며, 집안의 사람과 집 밖의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다.
실제 건물의 70%정도밖에 안되는 '집'이지만 전시장에선 거대하다.
"공간을 이동할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가벼운 재료를 선택했던 접어서 옮기려는 의도였어요. 1/5로 축소한 작품으로 한사람이 통과할수 있는 공간인데 집속에 들어가는 느낌이 났으면 해요. 공간을 기억할수 있는 정보를 원했거든요."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뉴욕의 스튜디오, 서울집, 뉴잉글랜드의 집, 베를린 집의 내부 하나하나를 천으로 만들어냈다. 세면기, 스위치, 손잡이뿐만 아니라, 벽에 붙어있는 설명서까지 정확하고 꼼꼼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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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한 천으로 만든 집은 세면기 문고리 변기등 섬세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져 있다. |
정교한 손바느질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뉴욕아파트등 천으로 만들어지는 집은 제작기간만 1년반 정도 걸린다. 10년째다. 13m짜리 거대작품도 나왔지만 10년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이번 전시는 자연스럽게 10년을 돌아보게 하더군요. 시간 공간이 압축된 전시죠. 리움을 위한 장소특정적 작품이지만 한데 모으면서 보니 새로운 의미가 창출됩니다."
한지처럼 반투명한 천의 은은한 겹침과 섬세한 손바느질의 정교함은 말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미묘해 언어의 무력함을 일으킨다.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 불가능에 도전하며 그가 지은 집에 살고 싶을 정도다.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은 안해요. 결과가 그렇게 나올뿐이죠. 성격, 천성이 저절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색도 아름답다고 하는데 한옥에서 살았던 기억때문인 것 같아요. 전통한옥은 벽은 하얀색이고 천장은 옥색과 하늘색이 섞인 묘한 색이었는데 그런게 절로 체화됐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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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옷 냉장고 음식, 실내화그릇등 생활용품을 미니어처로 세밀하게 만들어 재현한 별똥별. |
디테일과 상상력은 그의 힘이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천으로 지은 집과 달리 진짜 건축물같은 '별똥별'작품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한옥과 아파트의 충돌을 표현한 '별똥별'은 진짜 집안 풍경을 그대로 묘사해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내부, 작가가 살았던 집안을 구성했던 수없이 많은 물건들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옷 그릇, 책상, 냉장고안에 들어있는 음식들, 심지어 책상에 어질러진 자, 색연필 등등 모형들의 세밀함과 정확함은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집은 피규어마니아들에게 통째 사고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서도호의 '떠도는 집'들이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재현하는 과정 역시 작가가 보낸 시간과 공간, 그로인해 만들어진 관계들을 숙고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제의적 과정으로 종교적 수행과 같은 행위다.
'집 시리즈'외에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경험할수 있는 영상도 눈길을 끈다.
'완벽한 집:다리 프로젝트'다. 6채널로 이루어진 이 영상작품은 다리를 짓기위한 드로잉과 건축적인 데이터들로 복잡양상을 띠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서울과 뉴욕사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는 그만이 발상할수 있는 아이같은 상상력이 흥미진진하다.
서울집과 뉴욕집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작가가 거주한다면 그 곳에서 삶은 서울에서 삶도 아니고 뉴욕에서 삶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 삶,자체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그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엉뚱한 욕심까지 생긴다. 전시는 6월 3일까지.관람료 일반 7000원.(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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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 1/5 Fallen Star – 1/5th Scale, 2008-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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