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며는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절창(絶唱) 장사익이 부르는 강남 아리랑에 실린 봄기운이 가슴에 스민다. 어렸을 시절, 봄은 언제나 강남 갔던 제비와 함께 돌아 왔다.
요즘이야 초근목피나 춘궁기란 말이 낯설지만, 말 그대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고 굶기를 밥 먹듯 했던, 끔찍이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왔다.
배고픔과 가난으로 온 나라가 암담하던 시절, 우리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한을 달랬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고 희망을 노래했다. 가난의 한이 실린 아리랑 가락과 남녘에서 희망의 봄기운을 물어 온 강남 제비 이야기가 그렇게 만났다.
한 많은 아리랑 가락과 강남 제비의 희망 스토리텔링이 어울리니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韓流) 콘텐츠의 단초도 열렸다. 그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암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강남 제비가 물어 온 희망의 박 씨를 우리 모두 함께 심었던 것 같다. 아옹다옹 싸우고 멱살잡이를 하면서 서로 낯을 붉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박 씨를 열심히 키워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시궁창에서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 슬기도 발휘한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다 온 것은 아니지만 용케 선진 한국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2012년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강남 갔던 제비와 함께 돌아 왔다.
올 봄은 윤달이 끼어 유난히 길다. 윤달이 아니어도 봄은 아직 춥고 긴 여정으로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목전에 다가 온 제 19대 총선 때문이다. 강남 제비와 함께 다시 찾아 온 이 따뜻한 봄을 여야가 패를 갈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냉랭한 봄으로 되돌려 놓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정치판이란 원래 다소의 시끄러움과 기만과 허위가 끼어드는, 불순물이 섞인 용광로다. 제로섬 게임의 속성 때문에 과정과 수단이 때로 목표와 방향을 벗어 나게도 한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 불순물을 걸러내고 궤도를 바로잡는 정치의 순기능 시스템이고 선거는 바로 이를 위한 장치이다.
총선거는 여야가 멱살잡이를 하는 싸움판이 결코 아니다. 여야로 나뉘어 그들만의 판을 짜는 놀이도 물론 아니다. 여야가 함께 모판을 갈고 거기서 틔운 소중한 씨앗을 유권자에게 골라 심어 달라고 요청하는 정중한 의식이다. 며칠 있으면 우리 모두 강남 제비가 물어 온 박 씨를 심어야 한다. 앞으로 4년, 나라의 행로를 판가름 할 소중한 박 씨를 심어야 한다. 놀부의 박 씨를 심으면 재앙의 박이 열릴 것이요, 흥부의 박 씨를 심으면 축복의 박이 열릴 것이다. 지금 희망의 박 씨를 심으면 올해 말 우린 다시 한 번 축복의 박을 탈 수 있다. 여야가 준비한 박 씨 가운데 놀부 박 씨는 가차 없이 버리고 흥부 박 씨만 골라 심으면 된다. 그것이 올 봄 우리가 온 정신을 기울여 해야 할 일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선진국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때로 경제가 정치를 앞 서는 불균형이 일부 개발독재형 개도국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했지만, 올 봄 우리는 정치가 경제뿐 아닌 모든 사회발전을 이끄는 진정한 견인차임을 온 정신을 차려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는 머지않아 틀림없이 축복의 박을 타게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국으로 우뚝 선 바로 ‘대한민국의 기적’이라는 ‘대박’ 말이다.
눈앞에 다가온 제 19대 총선거가 참으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