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땅 독일을 적신 연천군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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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6-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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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최종복 기자=“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오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사무친 이 노래가 독일 분단의 상징 뫼들라로이트에서 울려 퍼졌을 때 김규선 연천군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독일 연수 나흘째인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감 통일비전 아카데미 지자체 리더반’은 ‘리틀 베를린’으로 불리는 뫼들라로이트를 방문해 작은 마을이 동서로 분단됐다가 통일된 과정을 눈으로 확인했다.

뫼들라로이트가 어떤 곳인가. 구 서독지역인 바이에른주와 동독지역인 튀링겐주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로 독일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이 마을은 1800년대부터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따라 주 경계선이 나뉘었다고 한다.

1949년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면서 당시 주민 50명이 살던 이 작은 마을의 비극이 시작됐다. 개울을 따라 1952년부터 1966년까지 동독 측에서 단계적으로 높이 3.4m, 길이 700m의 장벽을 설치한 것.

동독 쪽에서는 서독 쪽으로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하는 행위조차 불허했다고 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던 개울 건너 주민끼리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마을이 1989년 12월 장벽이 뚫리면서 새 역사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통일 후에는 분단의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 국경 장벽이 설치됐던 장소에 기념물과 박물관이 조성됐다. 현재 마을은 바이에른주 소속 퇴펜시와 튀링겐주 소속 게펠시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으며 퇴펜시에 33명, 게펠시에 19명 등 5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뫼들라로이트와 비교되는 국내 지역으로는 연천군을 들 수 있다. 연천군은 백학면, 왕징면 등 2개 면의 일부 지역이 북한 땅이다. 뫼들라로이트가 분단 37년 만에 국경이 열린 데 반해 연천군은 60년 가까이 분단됐음에도 언제 국경이 허물어질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규선 연천군수가 흘린 눈물에는 비극의 역사가 끝난 뫼들라로이트와 대비되는 연천의 회한이 담겨 있다.

김 군수는 “굉장히 안타깝다. 피눈물이 날 정도로 회환이 든다. 통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됐다”며 “북한의 연천지역과 동질감을 회복하기 위해 청소년·스포츠 교류 등 군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리더반은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이 마을 역사가 담긴 영상물을 관람한 데 이어 동서독 당시 마을을 갈라놓은 장벽과 철조망, 감시초소를 똑같이 재현해 놓은 기념관을 둘러봤다. 특히, 분단과 통일의 현장에서 리더반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한마음으로 합창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그륀츠너 씨는 “우리 마을의 역사를 통해 한국이 분단 현실을 공감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고, 차프 씨는 “통일 물결이 밖으로 퍼질 때 통일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해 한국이 통일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성렬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독일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뫼들라로이트 방문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다”며 “한반도 통일이 연천 같은 청정·접경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한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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