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유로 2012’를 유로존 위기에 빗대어 평가하면 10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자금을 요청한 ‘슬픈 축구강국’ 스페인의 ‘환호작약(歡呼雀躍, 기뻐서 소리치며 날뛰다)’과 경제와 축구를 모두 평정하려던 ‘전차군단’ 독일의 ‘훼우일단(毁于一旦, 하루 아침에 무너지다)’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2일 새벽(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완파하며 앙리 들로네(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유로 2008에 이어 역대 최초로 대회 2연패와 동시에 2010 남아공월드컵 우승을 포함, 3개 메이저대회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스페인은 경제난에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우승이 갖는 또 다른 의미다.
재정위기에 빠져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인 스페인은 우승한 반면, 돈을 대줘야 하는 독일은 이탈리아에 져 4강에 그쳤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제 위기로 독일의 눈치를 보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자국의 팀이 우승후보로 거론된 ‘전차군단’ 독일을 꺾고 결승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직 하다.
이는 최근 막을 내린 EU 정상회의에서 통념이 깨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강경한 원칙론을 고수하며 깐깐하게 굴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사실 이번 정상회의의 구도는 ‘스페인·이탈리아 對 독일’의 구도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국채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강하게 요구했다. 두 나라 모두 ‘7% 공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7%를 넘으면 국채시장이 마비돼 사실상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는 게 금융시장의 통설이다. EU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스페인(6.90%)과 이탈리아(6.23%) 모두 10년물 금리가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스페인·이탈리아 연합 구도에 독일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까지 가세하면서 협상의 무게추가 기울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4강 중에서 독일은 고립됐다.
결국 독일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원하던 ▲유로존구제기금의 은행 직접 지원 ▲구제기금의 유로존 국채 직매입 허용 ▲구제기금의 최우선 변제권한 박탈 등 주요 요구안을 모두 수용해야만 했다.
독일은 유럽차원의 금융감독시스템을 만든다는 단서 조항을 넣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다. 앞선 3가지 항목은 금융감독 시스템을 만든 뒤에야 시행할 수 있다. 이때문에 독일 언론은 메르켈 총리에게 ‘패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메르켈이 양보한 게 아니라 ‘뼈아픈 패배’를 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로2012가 끝난 지금 독일은 이탈리아에 축구에서도 졌고 협상에서도 졌다는 말이 현지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와중에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가 이번 정상회의의 진정한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스페인을 지렛대 삼아 이탈리아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 양강 체제에서 벗어나 EU 내에서 제3의 세력을 규합하려는 이탈리아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스페인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은행권 부실이 급격히 확대됐는데 이를 안정시킬 수 있는 재정이 부실한 상황이어서 올 들어 제2의 불안국가로 대두됐다. 결국 스페인은 지난 6월 9일 은행 부문에 대한 구제금융을 유럽연합(EU)에 공식 요청했다. 규모는 최대 100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 경제가 2ㆍ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스페인 정부는 올해 하반기 강도 높은 개혁정책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어쩌면 축구공 하나와 뛰어 다닐 공간만 있으면 경제적 부담없이 어느곳에서든지 체력과 정신을 단련할 수 있는 ‘국기(國技)’ 축구에서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금융시장으로 시선을 좁혀보면 5일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결정이 주목된다. 25bp의 금리인하 또는 유동성 공급 확대 조치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