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도착한 뒤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후진타오 중국국가 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
중국은 20년 전 한국과 수교를 맺음으로써 동아시아의 외교를 뒤흔들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의 시대'에 중국 수교 성년을 맞이한 한국, 우리의 발전 방향은 어디일까.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늘 강대국의 위협 속에 존재해 왔다. 한국의 대(對)중 무역이 대미 무역보다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향후 미국과 중국이 대립할 때 우리는 미국 혹은 중국을 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곤란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시나리오도 쉽게 들린다.
오늘날의 동북아 외교질서를 흔든 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을 짚어본다면 20년 전의 중국을 보고 20년 후의 중국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경제는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의 경제 교류, 정치, 사회문화 분야에 있어 분석 진단한 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해 본다.
◆과거, 동북아 외교질서를 뒤흔든 한·중 수교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당시만 해도 오늘날 중국이 동북아 패권을 흔들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해 한국이 미국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이 일찍 오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20년 전 당시 혈맹국이었던 북한을 저버리고 한국과 수교를 맺은 중국의 통 큰 결정은 어쩌면 오늘날 중국의 역량을 점쳐 볼 수 있는 외교적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1992년 7월 15일 평안북도 묘향산 별장. 평양을 출발한 첸지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김일성 주석의 표정에는 초조감과 착잡함이 묻어났다. 첸 부장이 들고 오는 베이징(北京)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앞서 정확히 석 달 전인 4월 15일,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이 김일성 주석의 80세 생일 축하행사 참석차 평양을 다녀갔다. 당시 양 주석은 북측에 조심스럽게 “이제는 한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때가 가까웠다”고 운을 뗐다. 한·중 수교를 추진할 방침임을 처음으로 시사한 발언이었다.
당시 김 주석이 중국의 양 주석에게 수교를 2~3년만 늦춰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북·미 관계가 새롭게 진전되고 있으니‘보조’를 맞춰달라는 취지였다.
당시 양 주석은 답변을 얼버무렸고, 석 달 후 한·중 수교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란 사실이 김 주석에게 전달된다.
이를 접한 김 주석은 “우리는 자주노선을 걷겠다. 중국이 하는 일은 중국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라고 말한다.
이는 북한이 앞으로는 중국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우리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로,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런 김 주석의 자주노선 표방은 사실상 북핵 문제의 서막이었다.
한·중 양국이 수교되는 동시에 한국은 대만과 단교한다. 한편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이후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중국이 남한과 수교하자 김 주석이 느끼는 외교적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북한은 ‘자주노선’을 걸으며 핵 개발에 매달린다.
동북아 외교질서를 뒤흔든 한·중 수교를 결정한 이는 바로 중국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이었다.
혈맹인 북한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집단지도체제의 ‘총의(總意)’로 한·중 수교를 추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도가 몸에 밴 중국인들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실용주의 노선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에게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얻음으로써 활발한 경제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과의 수교로 경제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수출 시장을 얻었고 정치 외교 안보 면에서는 남북 관계, 한·일 관계 등에서 그전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무해양득(無害兩得)을 강조한 덩샤오핑의 중국 통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중국 경제발전만은 뜻대로 이룬 것이다.
◆‘중국의 시대’에 수교 20년을 맞은 ‘성년 한국’
북한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섰고 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대두되는 가운데,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두려울 정도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30년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 등장과 이들의 지정학적 패권주의 등장은 필연적이란 분석하고 있다.
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일본은 미·일 동맹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 지난 11일 중국과 일본 순시선이 센카쿠 열도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센카쿠 국유화 방침을 밝힌 지 나흘 만에 중국 정부 선박이 인접 해역에 진입해 3시간 남짓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를 야기했고, 양국 외교 수장들이 외교장관회담에서 설전을 벌이는 등 충돌했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일본 주재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들여“매우 심각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위정선은 휴어기 관리 강화 목적으로 순항했으며 이는 정상적인 공무”라고 반박했다.
불길은 외교 무대로 옮겨졌다.
일본 언론들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상과 양제츠(杨洁篪) 중국 외교부장이 이날 별도의 양자 회담에서 설전을 벌였다고 전했다.
양 부장은 중국 순시선 진입을 항의하는 겐바 외상에게 “(일본은) 실제 행동으로 양국 관계의 큰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며 센카쿠 열도 국유화 방침을 철회하라고 맞받아쳤다.
또 최근 중국을 능가할 만한 국가로 떠오른 인도와 미·일 동맹 등을 내세우는 일본만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지어 20년 후 진정한 경제대국으로 살아남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말도 나온다.
반면 한·중 수교 20년을 맞은‘성년 한국’은 점점 더 중국에 의존해 예속되고 말 것이란 예측도 심심찮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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