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 영광의 과거 우아한 건축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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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면서도 웅숭깊은 내력을 지닌 아야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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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카톨릭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아야소피아 내부 |
◆ 화해와 관용의 상징 아야소피아
어느 여행지나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기 마련이다. 아야소피아는 바로 그런 곳이다. 설혹 터키를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돔형 지붕의 사원이 바로 아야소피아다. 아야소피아(聖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를 뜻하는 하기아소피아로도 불린다. 원래 아야소피아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만 해도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화려하고 정교한 아야소피아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의 극치로 불리는 솔로몬 궁전보다 더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아야 소피아를 재건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헌당식날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라고 외쳤을까?
콘스탄티노플이 술탄 메머드 2세에게 정복당하면서 이슬람제국이 건설되자 아야소피아를 모스크(사원)로 사용하겠다고 명했다. 아야소피아의 지붕이 돔형으로 바뀌었지만 화려하면서도 웅숭깊은 내력조차 지울 수는 없었다.
아야소피아는 화해와 관용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당을 사원으로 바꿔버렸다지만 어느 것 하나 파괴된 것이 없다. 이슬람 사원이면서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자이크와 함께 아랍어로 알리와 무하마드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의 이름이 쓰여진 원판을 함께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오색 찬연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향해 있는 대리석인 미흐랍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종교가 만나 평화롭게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후대 사람들에게 선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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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살려낸 블루모스크는 푸른 빛 궁전의 위용. |
아야소피아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면 건너편에 세워진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다.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직경이 무려 23.5m에 이른다. 건물 안의 꽃나무와 과일을 표현한 갤러리의 타일은 장인의 솜씨가 드러나는 걸작들이다. 블루모스크를 지은 제14대 술탄인 아흐멧 1세는 선대 술탄들에 의해 정복되고 정비된 이스탄불에 오스만 왕조의 정통성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의 결과 유럽 국가들이 부의 상징으로 여겼던 중국의 청화 백자를 들여와 사원을 건설하려했다. 하지만 모스크를 꾸미는데 청화백자를 사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자 이를 대신해 이즈닉 지역에서 생산됐던 백색 바탕에 푸른 색 안료를 표현한 이즈닉 타일을 이용해 부와 화려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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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베르사이유 돌마바흐체 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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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마바흐체궁전의 건축물들은 비잔틴 건축의 정수다. |
◆ 화려함의 극치 터키의 베르사이유 돌마바흐체
이스탄불이 자랑하는 돌마바흐체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 하나다. 오스만제국 압두메지트 1세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터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라도 불리는 웅숭깊은 곳이다. 톱카프 궁전이 동양적인 분위기라면 돌마바흐체 궁전은 서양적인 모습이다. 궁전의 앞길은 바다를 메워서 만들어졌기에 ‘바다위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1843년부터 1856년 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순금만 무려 14톤 은이 40톤이나 사용되었다하니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궁전은 모두 3층의 건물로 무려 285개나 되는 방과 43개의 홀 36개의 샹들리에가 있다. 궁전을 돌다보면 마치 술탄의 시대를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술탄의 방과 첩들의 방, 목욕탄 영빈관 술탄의 집무실이 차례로 펼쳐진다. 대형홀인 ‘황제의 방’ 천장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사한 것으로 알려진 대형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전구만 무려 750개에 무게만 4.5톤에 달하는 거대한 샹들리에는 국가적인 행사나 외국의 귀빈이 찾을때만 불을 켠다고 한다. 술탄들이 이용하던 궁전은 후에 공화정이 되면서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관저로 사용하기도 했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38년 11월 10일 9시 5분에 사망했다. 위대한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자 시간도 같이 멈추어버렸다. 지금도 집무실의 시계는 9시5분을 가리키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화려함의 정수를 이룬다면 톱카프 궁전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여년 간 오스만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인 톱카프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해 가 합류하는 지점에 놓여져 있다. 겉 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부에는 다양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전시장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모세가 홍해를 갈랐을 때 사용했다는 지팡이에서 세계 요한의 두개골, 다윗의 칼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8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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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저장소인 예레바탄 사라이의 가장 안쪽에 있는 메두사 |
◆ 지하에 만들어진 신비로운 지하궁전 ‘예레바탄 사라이’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은 비단 지상에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동로마제국의 물저장소인 ‘예레바탄 사라이’는 단순히 저장소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지하궁전의 모습이다.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예레바탄 사라이는 아야 소피아로부터 맞은 방향으로 디반 욜류의 맨 위쪽 부근에 위치해 있다. 지하궁전은 1987년 수백년 동안 쌓인 진흙과 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복원되었다.어두운 궁전아래 조금씩 빛이 스며들고 은은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신비로운 느낌까지 준다.
특이하게도 기둥모양이 제작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문양은 이오니아식 코닌트식 등 여러 시대의 미술양식이 제멋대로 섞여 있다. 저장고 맨 안쪽에는 메두사 머리가 기둥에 짓눌려 있다. 메두사라는 괴물자체가 마주보면 돌이되는 저주에 걸려있기에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뒤집어놓은 거라는 얘기도 있고 건설하던 기독교들이 이교도를 멸시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놓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21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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