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세청 관계자는 “앞으로 국세청은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역외탈세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역량을 집중해 끝까지 추적·과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세 또는 소득세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15% 미만)을 적용하는 대신 계좌 유지 및 법인 설립 수수료를 받는 국가나 지역을 말하며 교통 요지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안전한 나라에 세워진다. 그 가운데 스위스는 최종 안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조세피난처는 기업들 입장에선 합법적인 절세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지만 문제는 역외 탈세에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역외탈세는 국부 유출은 물론 대기업 자산가들이 덜 낸 세금만큼 고스란히 선량한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조세부담을 전가해 소득 양극화를 고착시킨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조세도피 사례는 ‘실제 사업은 국내에서 하지만 사업장 주소지를 해외에 두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익은 조세피난처로 흘러가고 기업은 불법적 이익을 얻게 되는 셈이다. 최근 많은 나라들이 경기침체를 겪으며 재정악화의 주범으로 조세피난처에 흘러가는 돈을 지목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지난해 초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세청은 역외 탈세 조사를 진행하면서 권 회장이 스위스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계좌를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스위스 간에 금융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조세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스위스 의회가 조세조약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면서 국세청은 권 회장의 스위스 은행계좌를 추적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권 회장은 국세청의 끈질긴 조사 끝에 국내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도 탈세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해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2200여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도 “권 회장은 페이퍼 컴퍼니와 비국내 거주인 행세를 통해 조세를 포탈했고 선박발주·윤활유·페인트 등 유관 업종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리베이트를 강요했다”며 “포탈세액이 총 2200억원이 넘고 죄질이 불량한데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중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조세 피난처를 애용하던 기업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국세청이 그 동안 제도적 한계 때문에 손이 닿지 않았던 역외 탈세범에 대해 더 이상 수수방관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세 피난처와의 외환거래가 지난 11년간 6배 가까이 늘었고, 한국 기업이 세운 서류상 회사는 30대 재벌 소속 47개를 포함해 5000개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검은돈이 몰리는 스위스와 정보교환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고위급 회의를 계속해서 개최할 방침이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7일에도 스위스 국세청과 공조해 스위스 비밀 계좌에 돈을 은닉해 둔 코스닥 상장사 대표인 역외(域外) 탈세범을 적발해 5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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